▲ 구태우 기자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농성장. 민족 대명절인 추석연휴 기간인데도 농성장은 분주했다. 단식농성 중인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연대노동자들의 가족과 시민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추석 당일인 19일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합동차례를 지냈다. 지지방문을 온 시민들은 1인 시위를 했고, 풍물패 길놀이와 제기차기·줄넘기 등 전통놀이가 농성장 곳곳에서 펼쳐졌다. 21일에는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 주최로 책 읽기·책 바자회·다독다독(多讀多讀) 낭송회가 열렸다. 대한문 앞은 노동자·시민들의 '큰집'이 됐다.

쌍용차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쌍용차 11명의 해고자와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는 이달 10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추석연휴 끝자락인 이날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시민 수십여명 동조단식 나서

12일간 물과 소금만 먹은 단식농성자들은 많이 야위어 보였다. 하지만 복직의 희망까지 야윈 것은 아니었다. 이날로 단식 12일차를 맞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추석연휴 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감사하다”며 “힘들고 어렵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해고자 김수경씨는 “단식 12일차가 되니 배고픔조차 무감각해진다”며 “(대한문 옆 도넛 매장을 가리키며) 도넛이 먹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하루에만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해고자들과 동조단식을 했다. 동조단식에 나선 이용길 노동당 대표는 “정상적인 사회라면 노동자들이 복직을 위해 12일 동안 단식을 해선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단식이 길어지지 않도록 쌍용차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와 음악 어우러진 '다독다독 낭송회'

이날 오후 대한문 앞에서 열린 다독다독 낭송회에서는 단식농성자들을 위한 시와 책 낭송회·연주회 등 다채로운 문화공연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야금과 거문고 등 전통악기 공연이 지나가는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가야금 3중주 공연을 펼친 송정아·박미현·이진수씨는 비틀즈의 <헤이 주드>를 가야금으로 연주해 이목을 끌었다. 박미현씨는 “쌍용차 사태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며 “불러 주면 언제든지 연주하러 오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박재동 화백·정혜윤 CBS PD는 각자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재즈피아니스트 몽라씨와 공공운수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 조합원 김선효씨는 각각 피아노와 거문고를 연주했다.

시인 심보선씨는 “음악과 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의지에 도움을 준다”며 “예술이 사람들 마음을 통해서 오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시민·노동자가 만드는 '반전 드라마'

이 밖에 책 바자회에도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출판사는 책을 기증했고, 문화예술인은 음악·그림 등 재능을 기부했다. 대한문을 오가는 시민들은 이날 450여권의 책을 구입했다. 한 시민은 바자회 도서 ‘50% 할인’ 판매임에도 해고자들을 위해 제값을 주고 사기도 했다. 책 판매를 담당한 박병우 민주노총 노동기본권실장은 “책을 팔면서 쌍용차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만 쌍용차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민 김정자씨는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단식농성 중인 해고자들의 손을 꼭 잡았다. 낭송회를 준비한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준비기간이 10일밖에 안 됐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며 “연대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해고자 한윤수씨는 “대한문 앞에 있으면서 (경찰과 취객들로 인해) 마음이 요동치는 일이 잦았다”며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낭송회에는 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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