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1. 서울 성동구시설관리공단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정진희(41)씨는 월급 통장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정씨의 시급은 4천9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4천860원)보다 겨우 40원 더 받는다. 지난달 각종 세액을 공제하고 손에 쥔 돈은 84만원. 쉬는 날이 많았던 2월(79만원)보다는 5만원 많지만 한 달을 먹고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복리후생 비용은 복지포인트 10만원이 유일하다.

"지난해 9월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야근에다 토요일 근무를 하면 130만원까지 받기는 합니다. 그런데 노상에서 일하다 보니 비염이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병원 갈 시간도 나지 않아 하루에 진통제 다섯 알을 삼켜 가며 버텼죠. 결국 주 40시간 근무하는 곳으로 옮겼어요."

정씨는 일흔이 넘은 어머니와 둘이 산다. 어머니가 하루 3시간씩 건물청소를 하는데, 둘의 벌이를 합쳐 봐야 한 달 100만원 안팎이다.

"점심 식대도 안 나와요. 주차장 부스에서 식은 밥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이 악물고 버텨요. 같이 일하는 동료는 맞벌이를 하는데도 아이가 아파 병원에라도 가면 한 달에 40만원씩 적자가 난데요."

#2. 서울 성북구 산하 성북문화재단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고순원(55)씨. 그의 시급은 5천520원이다. 한 달 기본급 115만4천원에 식대 월 12만원을 더해 127만4천원을 받는다. 여기에 연간 복지포인트가 120만원 주어진다. 고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다. 2년 전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그의 수입이 유일한 가계소득이 됐다.

"주 5일 근무를 하는데요. 월급만으로는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요. 주말에 알음알음 아는 집 일을 봐주면서 근근이 삽니다. 그래도 성동구는 다른 구청에 비하면 사정이 좀 낫지요."

정씨와 고씨 모두 서울시 산하 구청 주차관리원으로 일하지만 받는 임금은 차이가 있다. 성북구의 고씨가 시간당 620원, 월 평균임금(복지포인트 포함)으로 환산하면 34만원가량 더 받는다. 성북구가 올해부터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한 데 따른 것이다. 성북구는 노원구와 더불어 법정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임금' 개념을 도입했다.

최저임금 무덤에서 태어난 생활임금운동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빈곤선 이상의 임금을 받도록 고안된 보수율을 말한다. 예컨대 전일제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당 임금을 뜻한다.

이러한 개념은 19세기 말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생활임금운동이 처음 시도된 곳은 미국이다. 94년 12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미국노총과 지역교회, 소수민족 단체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생활임금 확보"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은 "지방정부와 거래관계에 있거나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업체는 연방정부가 정한 법정 최저임금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생활임금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볼티모어의 생활임금조례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40여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생활임금 운동이 활성화된 배경은 형편없이 낮은 최저임금 때문이다. 96년 기준 미국의 최저임금은 5.15달러다. 최저임금 구매력이 68년과 비교해 30%나 하락했다. 이에 따라 공공정책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생활임금조례 제정운동이었다. 생활임금조례의 기본원칙은 납세자의 세금이 질 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납세자가 내는 세금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회사는 노동자에게 괜찮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기준을 정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을 넘어 영국·캐나다 등 세계 각지로 전파됐다.

생활임금 제도는 지난해 치러진 런던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2007년부터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런던시에서는 시장이 매년 생활임금을 공표한다. 지난해 런던시는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8.3파운드(1만4천970원) 이상의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영국 법정 최저임금 6.08파운드보다 높은 수준이다.

생활임금은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는 후원업체 등 계약을 맺은 1천개 이상 기업에 런던시의 생활임금을 준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올림픽 관련 업체들은 고용한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에 관해 상세한 모니터링 보고서를 작성해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제출했다.

생활임금 도전 6개월, 노원구·성북구의 변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생활임금 도입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서울시 성북구와 노원구는 올해 1월부터 시설관리공단 소속 노동자 151명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지자체와 참여연대가 설정한 올해 적용 생활임금은 시간당 6천496원으로, 월 135만7천원이다. 법정 최저임금(시간당 4천860원)보다 1.3배 높다. 2011년 5인 이상 사업장 평균임금(234만원)의 58%에 해당한다.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요구액인 노동자 평균임금 50%에 서울시 물가조정분 8%를 반영한 금액이다. 물가조정분은 서울시 시민복지기준선을 따랐다.

두 지차체의 생활임금제도는 미국 볼티모어나 런던과는 차이가 있다. 노원·성북구는 산하 공단 노동자 151명의 임금 하한선을 생활임금(135만7천원) 수준에 맞췄다. 임금 부족분을 구청에서 보전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노원구는 올해 1억6천800만원, 성북구는 1억198만원의 관련예산을 책정했다. 김용우 노원구 일자리정책팀장은 "구에서 보전하는 임금차액은 1인당 적게는 1만원대에서 많게는 10만원대"라고 설명했다.

노원·성북구의 생활임금 실험은 6개월 뒤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피부로 느낄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대상자가 너무 적어 파급효과가 크지 않은 탓이다. 노원구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6개월 만에 눈에 보이는 변화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일에 대한 의욕이 높아지고 신규채용시 지원자가 증가하는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 수혜자인 청소노동자들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성북구 청소·경비·주차관리 노동자들이 서울일반노조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올해 임금·단체교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엄밀히 말해 노원·성북구의 생활임금은 조달계약 관계에 있는 민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자체의 임금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공동조달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8%에서 11%”라며 “생활임금 조례제정과 조달정책을 접목하면 공공부문 간접고용의 폐해를 줄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와 성북구는 내년부터 생활임금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생활임금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생활임금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연구용역에서는 총액인건비제도와 정부 예산편성지침, 지자체와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 저임금 해소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찾아낼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례를 만들고 규정을 정비하는 법적 절차를 추진한다.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의 재발견' 부천시

서울 노원·성북구의 생활임금 제도가 민주당 출신 구청장 결단에서 비롯됐다면 경기도 부천시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주도하고 있다. 부천시 노사민정협의회는 2011년 12월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처음 제안했다. 김준영 부천지역노조 위원장은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가 저임금·빈곤 문제를 해소하는 데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임금 계층의 임금하한선을 높이는 보완전략으로 생활임금 제도를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천시는 협의회의 제안을 수용해 지난해 4월 부천시 생활임금조례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세 차례에 걸쳐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 실태조사가 실시됐다. 부천시 소속이거나 계약관계에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 가운데 시급 6천원 이하 1천267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절반 이상(58.2%)이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미만을 받고 있었다.

부천시 생활임금조례제정추진위는 노동계의 최저생계비 산출공식을 기반으로 올해 생활임금을 5천180원으로 정했다. 부천시가 지난해 지출한 인건비 총액에서 한 달 6천만원을 증액하면 부천시 소속이거나 위탁·용역계약을 맺은 노동자 680명에게 생활임금(시급 5천180원)을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생활임금 보장에 필요한 예산규모는 연간 4억3천만원가량이었다. 부천시는 지난해 12월 생활임금 조례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부천시의 생활임금조례안은 시의회에 상정되기도 전에 제동이 걸렸다. 법제처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정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생활임금은 상위법령에 근거가 없어 시장의 고유권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부천시 생활임금조례제정추진위는 다시 법률검토에 나섰다. 하반기에 시의회에서 의원 발의로 조례안 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준영 위원장은 “부천시 생활임금조례 제정운동 과정에서 지역 노사민정의 역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생활임금조례안이 통과된다면 지역 노사민정협의체가 생활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의 '교집합'

미국도, 영국도, 우리나라도 생활임금운동의 1차적 목표는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중위임금(월 180만원)의 3분의 2인 12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5.9%였다. 임금노동자 4명 중 1명, 비정규직 2명 중 1명꼴이다.<그래프 참조>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법정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정액급여의 38.8% 수준이다. 노동자 평균 임금총액 대비 최저임금은 30.1%에 머물러 있다.

최저임금법은 생계비와 유사노동자 임금·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사가 지리한 줄다리기를 벌인 뒤 공익위원들이 절충안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기변동이나 물가상승률은 중요한 변수조차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25년 역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생활임금운동은 특히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하는 대안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생활임금운동이 지역사회에서 경제정의를 위한 풀뿌리 운동으로, 노조에서 임금인상과 조직률 확대를 위한 운동으로 결합하면서 ‘지역사회 노동조합주의(community unionism)’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노동계는 지역 중심 생활임금운동에 적극적이지 않다. 자칫 사용자가 요구하는 지역별 최저임금제도로 귀결될까 우려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생활임금이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한계를 메우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황선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투쟁은 5~6월 최저임금 결정시기에만 반짝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역사회와 노동계가 일상적으로 연대하면서 저임금과 빈곤 해소를 위한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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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1] 얼마 받아야 생활임금?

생활임금의 적정 수준은 얼마일까. 미국에서 생활임금은 지역에 따라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최저 수준인 밀워키는 시간당 6.25달러이고, 최고 수준인 산타크루즈는 12달러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천시는 시간당 5천180원을 하한선으로 설정한 반면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는 6천493원으로 정했다.

생활임금 결정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절대적 방법은 생계비 추계 방식이다. 쉽게 말해 한 가족이 시장에서 생필품을 산다고 가정하고 구성한 장바구니로 생계비를 추계하는 것이다. 지역별 차이를 반영한 식료품비·주거비·교육비·의류 및 잡비·의료비 등 품목을 계산해 적정한 생활임금을 정한다. 반면 상대적 방법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나 지역의 중위소득과 같은 특정한 기준 대비로 생활임금을 결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참여연대가 주최한 ‘생활임금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한국의 적용 가능성 정책토론회’에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단신 근로자 가구를 산정기준으로 하고 교육비나 주거비를 현실화하는 방안 △4인가구 생계비를 맞벌이를 전제로 재산정하거나 △단독가구 형태로 전환해 비용을 산출하는 세 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출된 2011년 기준 생활임금은 최저 195만원에서 최고 222만원이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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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2] 현행법에 가로막힌 생활임금조례

"상위법령의 근거 없이 부천시장으로 하여금 부천시 소속 근로자에게 일정액의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조례로 강제하는 것은 부천시장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단됩니다."

법제처가 지난해 12월27일 부천시에 통보한 생활임금조례에 대한 법적 검토 의견이다. 법제처는 생활임금 조례가 △시장 고유권한을 침해하고 △지방재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개인에 대한 보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법하며 △지방계약법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법제처에 따르면 부천시 소속 직원의 임금 등 인사는 부천시장의 고유권한인데, 법정 최저임금을 웃도는 생활임금 조례는 이러한 시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부천시와 민간위탁·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가 노동자에게 시가 생활임금을 지원하거나 이를 강제하는 것도 법률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게 법제처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대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활임금조례가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최저임금 기준보다 높은 임금을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침익적 성격이 있다"면서도 "지방자치법은 법령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생활임금제도의 근거규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법이 최저임금을 웃도는 임금지급을 규제하는 법이 아닌 이상 생활임금조례가 반드시 상위법과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어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제도 관련 조항을 신설하거나 지방계약법을 고쳐 생활임금 도입을 위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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