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와 비슷한 '기술 먹튀' 사례로 꼽히는 LCD 제조업체 하이디스에서 빠르면 5월께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부 여야 의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대만 출신 외국인투자기업인 대주주의 구조조정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디스가 쌍용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산계획 전무, 5월 회사채 만기=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하이디스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배재형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과 고우정 금속노련 하이디스노조 위원장은 “회사측은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정부와 회사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시작한 하이디스는 현대전자 부도 이후 2002년과 2008년 각각 중국과 대만기업인 비오이와 이잉크에 매각되면서 막대한 기술유출 의혹을 받아 왔다. 특히 현재 대주주인 이잉크가 계열사 등 관계회사를 통한 외주생산·특허공유에 주력하면서 기술유출과 생산량 하락에 시달렸다.

결국 하이디스는 지난해 6~12월까지 휴업을 반복하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전면휴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임원 5명을 포함해 70명이 권고사직을 했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 어둡다. 생산물량이 없어 6월부터 1년간 생산계획이 없는 데다, 5월부터 1천500억원에 이르는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전체 직원 절반 잘리나=하이디스와 대주주인 이잉크는 지금까지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언급한 적이 없다. 두 노조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이천시청·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과의 면담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

현재 회사측은 경영정상화 계획인 ‘서바이벌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노조와의 면담에서 존슨 리 하이디스 회장은 “서바이벌플랜이 확정되지 않아 경영정상화 방안을 얘기할 수 없다”며 “확정되는 대로 노조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구조조정·외투기업 전문 법무법인을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5월을 전후해 구조조정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구조조정 시나리오로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던가, 장기간 휴업으로 생계곤란을 겪은 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찾아 회사를 떠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전체 직원 850여명 중 절반 가까이 줄일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노조가 회사 구조조정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만기가 찾아오는 회사채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순옥 의원은 “1천500억원의 회사채 중 1천100억원은 이잉크와 관련한 회사들에게 빌려 온 것이어서 대주주 의지에 따라 연기할 수 있다”며 “외국은행에서 빌린 300억원 정도만 대주주가 갚는다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당국 “노사상생”만 반복=하이디스는 경기도 이천에서 규모가 세 번째 큰 기업이다. 경영정상화 방안을 찾지 못하면 지역경제에 미칠 타격을 가늠하기 힘들다. 해당 지역구 출신인 유승우 새누리당 의원은 근로자의 고용보장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영정상화와 고용보장 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와 지자체는 한마디로 손을 놓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고용노동부·지식경제부·이천시청 관계자들은 “노사 간 상생을 위한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 외에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김재홍 이천시 기업지원과장은 “정부의 무분별한 알짜기업 매각정책 때문에 제2의 쌍용차 사태가 우려된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협력”이라고 말을 아꼈다. 임동희 노동부 근로개선정책과 서기관은 “현재까지 하이디스에 노동관련법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추후에 발견될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발제를 맡은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하이디스의 서바이벌플랜은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신규 아이템 몇 개를 1~2년 더 생산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기술유출과 생산량 감소의 원인인) 특허공유와 외주생산을 중단하고 투자계획과 자금 확보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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