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가장 많이 대표발의한 의안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유출방지법) 개정안이다. 박 당선자는 2007년 5월, 2009년 6월, 그리고 2011년 2월 세 번에 걸쳐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가 지난 10년간 대표발의한 의안이 15개인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비중을 두고 추진한 법안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이 제출한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개정안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06년 비오이하이디스의 부도 이후 대규모 ‘기술 먹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당시 정부는 중국 비오이가 2002년 11월 하이디스와 인수합병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순간부터 2006년 9월 법원에 회생절차 신청을 할 때까지 너무나 뻔뻔하게 진행된 기술유출 시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없었고, 관련법 규정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들어선 이후 국가정보원이 조사에 나서고, 2007년에 노조가 전임 대표이사를 기소하면서 2008년 3월 대표이사가 배임혐의로 구속되지만 이미 모든 기술은 중국 비오이로 넘어간 뒤였다.

박근혜 의원이 2007년 제출한 개정안은 인수합병 및 합작투자에 의한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이나 원상회복을 위해 나서도록 한 것이다. 특히 개정안이 발의되고 국회에 상정됐던 시기는 산업은행이 하이디스를 대만 회사 프라임뷰 인터내셔널(PVI)로 매각하려던 때였다. 대만이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LCD 기술 획득을 위해 각종 기술유출 사건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개정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꽤 높았다.

하지만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7년 11월 하이디스를 대만 PVI사에 넘겨 버렸다. 법안 역시 2008년 5월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산업자원부는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개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규제를 엄격하게 하다 보면 외국인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기술유출 방지와 원상회복에 관한 정부 차원의 무관심과 법적 허점은 2009년 1월 중국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획부도 사건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쌍용차 사태가 터진 직후 2009년 6월, 2007년과 비슷한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개정안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개발한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핵심기술 보유기업의 인수합병 및 합작투자를 정부가 사전에 승인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이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2011년 6월 말 국회에서 통과됐다. 통과된 법안에서는 사전신고를 사전승인으로 바꾸고, 보호기술 대상 역시 엄격하게 제한했다.

한편 대만에 매각된 하이디스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형태로 기술유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다소 노골적일 정도로 기술 전체를 중국으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대만 이잉크사는 하이디스 기술을 본사의 영업에 이용하고 동시에 특허를 공유하는 식으로 좀 더 세련된 태도를 취했다.

전자책과 태블릿PC용 패널을 생산·판매하는 이잉크사는 하이디스 인수 이후 하이디스가 보유한 광시야각 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아마존 킨들·애플 아이패드에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일본 미츠비치 전자, 알파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거래처를 만들어 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하이디스 자체는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철저히 소외됐다. 대만 이잉크사는 다양한 업체와 하이디스의 특허공유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하이디스에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았다. 하이디스가 5년간 설비에 투자한 액수는 연평균 80억원 내외로 매출액의 2%에 불과했는데, 같은 기간 LG디스플레이가 매출액의 17%인 19조원을 설비투자에 사용한 것과 비교해 보면 사실상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은 셈이다. 동시에 대만 이잉크사는 하이디스 기술을 이용하면서 생산을 자신의 대만 조인트벤처회사나 투자회사에 아웃소싱했다.

하이디스를 인수한 대만 이잉크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출은 250%가 늘어났고, 순익은 500%가 늘었다. 물론 이 기간 하이디스는 여전히 부족한 투자와 생산량 속에서 매년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2013년 1월 현재 기업의 존폐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내몰렸다. 대만 이잉크사는 이 와중에도 하이디스의 광시야각 기술을 대만 LCD패널 아웃소싱 업체와 10년간 특허공유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했다. 하이디스가 어떻게 되더라도 자신은 그 기술을 10년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세 번의 개정안을 통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특히 인수합병에 의한 기술유출에 대해 특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이디스 10년의 역사는 바로 박근혜 당선자가 이야기하던 인수합병에 의한 기술유출 그 자체다. 그리고 그 피해는 1천여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수천억원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박근혜 당선자의 해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스스로 세 번에 걸쳐 입법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던 사안인 만큼 현실적 해결방법을 기대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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