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중국 상하이차의 먹튀로 발생한 쌍용자동차의 비극이 5년 만에 경기도 이천 하이디스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 킨들 생산업체로 유명한 대만 이잉크(E-ink)사가 실질적 대주주인 하이디스는 지난해 12월 대규모 권고사직을 실시하더니 올해 1월부터 휴업에 돌입했다. 2~3월에 간간이 공장가동 계획이 있지만 올해 제대로 된 사업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현재 대만 경영진은 자본철수까지 염두에 둔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하이디스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외국 먹튀자본의 가장 극단적 사례다. 89년 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시작한 하이디스는 현대전자가 2001년 최종 부도가 난 이후 분리매각될 당시 2002년 11월 중국 비오이에 매각됐다. 당시 하이디스는 일본 히타치나 산요와 같은 회사로부터 기술료를 받을 정도의 LCD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묻지마’ 매각정책에 장난감 수준의 전자제품을 만들던 중국 비오이에 매각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이디스는 8천억원 매출에 1천억원 가까운 이익을 내는 기업에서 비오이가 경영한 4년간 3천억원 매출에 2천억원 가까운 적자를 내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비오이가 한 일은 단 하나였다. 바로 기술유출이다. 2008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비오이 경영진과 결탁한 간부들이 4천300여건의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했다. 비오이는 이 과정에서 기술료를 단 한 푼도 안 낸 것은 물론 오히려 하이디스의 돈으로 중국 비오이 계열사에 설비투자를 하도록 해 1천500억원의 현금을 빼 갔다. 비오이가 하이디스를 인수할 때 실제 쓴 돈이 1천500억원에 불과했으니, 비오이는 단 1원도 하이디스에 투자하지 않은 채 하이디스의 모든 기술을 통째로 가지고 간 셈이다. 2005년까지도 적자를 내던 비오이는 하이디스의 기술을 이용해 2011년 4천억원의 순익을 내는 기업으로 도약했다.

기술 먹튀를 끝낸 비오이는 2006년 9월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해 버리고 중국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하이디스는 2년간의 법정관리를 거쳐 대만 이잉크(당시 이름은 피브이아이)사에 재매각됐다.

하이디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잉크사는 하이디스 생산 중 상당 부분을 자신의 계열사를 통한 내부거래를 감행해 하이디스가 얻었어야 할 수익을 수탈했다. 하이디스가 만든 패널은 이잉크사의 중국공장인 티오씨(Transcend Optronic Co., Ltd)를 통해 모듈로 조립돼 납품됐는데, 이 회사는 하이디스로부터 낮은 단가로 제품을 공급받아 개당 수익을 하이디스보다 훨씬 높게 챙겨 갔다.

한편 이잉크사는 아주 복잡한 지분구조를 통해 하이디스의 부당한 내부거래로 인한 이득을 숨겼다. 이 티오씨라는 회사는 피브이아이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의 소유다. 피브이인터내셔널은 또 피브이아이 글로벌이라는 회사의 소유이고, 피브이아이 글로벌이 이잉크홀딩스의 계열사가 되는 식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피브이아이 인터내셔널과 피브이아이 글로벌이라는 회사의 정체인데, 두 회사는 모두 국제적 탈세지역으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위치한 페이퍼컴퍼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잉크는 하이디스를 인수한 이후 하이디스의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합작사들과 외주생산을 해 왔다. 이잉크가 2011년에 투자한 대만의 충화픽처기술(CPT)이나 2012년에 투자한 에이유옵트로닉스(AUO)가 대표적이다. 이잉크는 하이디스에 설비투자를 하는 대신 하이디스의 기술을 가지고 대만과 중국의 LCD 제조업체에서 외주생산을 하는 것을 2년 넘게 해 왔다.

또한 하이디스의 기술을 가지고 자신의 계열사 혹은 거래업체와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이득을 챙겼다. 그리고 수익성이 좋은 제품들은 모두 계열회사를 통해 외주생산하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만 하이디스에서 생산하게 해 매출이 늘수록 적자가 커지는 기형적 생산구조를 만들었다. 하이디스는 2012년 3분기까지 매출이 전년보다 35% 늘어나는 큰 성장을 했지만, 영업적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46%가 늘어났다.

하이디스는 중국 비오이부터 대만 이잉크까지 10년 동안 그야말로 넝마주이가 됐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매각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그야말로 ‘먹튀’가 뻔한 비오이사에 하이디스를 팔아 넘겼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망상에 중국의 눈치를 보며 눈앞에서 기술을 빼 가는 중국 경영진들을 방치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법정관리 기간에 세금이 3천억원 넘게 들어간 하이디스를 다시 노동자들의 반대 속에서도 이잉크사에 헐값에 팔아 치웠다. 그 결과 현재 1천여명의 노동자들은 또다시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하이디스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이디스는 현재 쌍용차가 10년 동안 걸어왔던 길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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