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1.29 일 07:30
상단여백
HOME 정치ㆍ경제 노동시장
[택배노동자 잇단 과로사 이유] 주당 71시간 초장시간 노동, 폭증한 물량 점심은 빵으로노동·사회단체 실태조사 결과 발표 … 택배연대노조, 대책 없으면 분류작업 전면거부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10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연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배송 수수료) 1천600원에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무거운 세제, 답이 있나요? 단가 수정 바란다고 했더니 (대리점주가) 본사계약 물건이라고 (거절)하네요.”

“편의점에 집화하러 왔다가 컵라면으로 점심 먹습니다.”

“마부가 끊임없이 말에 채찍질하듯 겨우 하루 14시간을 감당해 내며 살아갑니다.”

택배노동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글이 넘쳐 난다. 그들이 공유하는 일상은 휴식없이 돌아간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면서 택배·배달 같은 생활물류서비스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10일 발표된 택배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시간이나 됐다. 이렇게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도 이들의 노동시간 대비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70여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함께한 택배노동사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는 전원 남성이었고,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67.7%였다.

“죽음 앞으로 걸어 들어가는 택배노동자의 삶”

택배노동자들은 대개 주 6일 일했다. 노동시간은 하루 최소 9.5시간에서 최대 12.7시간이다. 코로나19로 업무량은 예년에 비해 30% 이상 증가한 상태다. 응답자의 4분의 1은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했고, 컵라면·빵·김밥 같은 간편식으로 식사를 대체했다. 배송물량을 약속한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은 어떨까. 주당 71시간, 야간·초과근무가 일상화됐지만 순소득은 약 234만원 수준이다. 노동시간 대비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이들은 일상적으로 주당 71시간 일하는데, 마치 죽음 앞으로 뚜벅뚜벅 걷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요약했다.

고용노동부의 만성과로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고시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해 일하면 산재로 인정한다. 고시 기준으로 보면 택배노동자들은 만성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응답자의 70%가 조합원이어서 노동시간 조사 결과가 현장 체감 수준보다 나았다”며 “노조가 설립된 현장은 평균 작업시간이 비조합원들보다는 한두 시간 정도 짧다”고 밝혔다. 노조가 과로사를 막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하차작업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택배노동자 7명이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모두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남성으로,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다 쓰러져 돌연사했다. 노조는 코로나19 이후 폭증한 업무량과 일상화된 초장시간 노동이 이들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대책위는 코로나19 재확산과 추석이 겹치면 택배물량이 50% 이상 폭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산재보험 가입률 40%, 사회안전망도 작동 안 해

사회안전망도 이들을 비껴갔다. 응답자 중 상당수가 노조 조합원이었는데도 산재보험 가입률은 40% 수준에 머물렀다. 10명 중 1명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본인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줄도 모르거나(39.6%),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16.8%)했다.

반면 사고나 질병에 대비해 개인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3분의 2나 됐다. 민간보험 가입자가 많은 이유는 이들의 고용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택배회사(원청)-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원·하청 다단계 하도급구조는 택배노동자들이 사실상 원청 택배회사에 종속된 노동을 함에도 택배회사에 고용 관련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든다. 원청은 사회보장 책임도, 교섭할 책임도 피해 간다.

대책위는 고용노동부가 원청 택배회사를 특별근로감독하라고 요구했다. 노동부는 지난 6월 택배회사 물류센터와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당시 근로감독은 주로 택배회사 물류업체 내근직이 대상이었고, 적발사항이 하청업체에 집중됐다. 배송업무를 담당하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점검할 수 없었다.

대책위는 단기적인 과로사 예방책으로 분류작업에 한시적으로 인력을 투입하라고 요구한다. 추석 물량 폭증에 함께 대비하자는 제안이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최근 노동자 보호를 위해 물량축소 요청제와 소형택배 자동화 시설인 MP(Multi Point)라인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위는 MP라인 도입이 업무간소화 수준에 머물러 분류작업 노동강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분류작업에 대한 정부·택배사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9월14일부터 16일까지 조합원 투표를 거쳐 분류작업을 전면거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편 이날 조사 결과 발표 뒤 열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정부·국회·택배사가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토론회는 대책위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같은 당 장경태·윤미향 의원이 주최했다.

정소희  sohe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소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