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인천 을왕리에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원영부씨가 아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바빠서 못 갔는데 이번 휴가 때 대전현충원에 계신 장모님하고 장인어른 뵙고 왔어요. 또 하루는 당일치기로 간절곶에 가서 회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해안가 산책도 하고요. 아내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재충전이 됐어요.”

2년차 롯데택배 노동자 김동석(42)씨는 단꿈 같은 2박3일의 휴가를 보내고 17일 업무에 복귀했다. 김씨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김동석씨는 “그동안 몸이 아파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며 “용차(대체인력)를 쓰면 하루에 몇십 만원씩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한진이 199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택배 브랜드 사업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 없는 날’이 시행됐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지난달 17일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한다”고 알리면서다.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택배·로젠택배가 협회 결정에 동참했다. 택배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아 생활한다. 대개 주 6일 근무를 수행하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도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아 그동안 유급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택배노동자는 첫 공식휴가를 어떻게 보냈을까. 17일 <매일노동뉴스>가 택배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가족과 물놀이·바베큐 파티 했죠”

택배를 시작한 지 11년째라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황성욱(51)씨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둔 가장이다. 택배 없는 날 시행으로 11년 만에 처음 1박2일 가족 여행을 떠났다. 황씨는 “통영에 있는 욕지도에 가서 바베큐도 해 먹고 아이들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며 “애들이 너무 좋아해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 없는 날을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도화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우리 아들은 하루에도 아빠를 100번을 부르는데요. 택배 시작한 지 14년 만에,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 지 6년 만에 택배 없는 날로 처음 휴가를 갔고, 꿈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로 일한 지 14년. 택배연대노조 부위원장이기도 한 원영부(50)씨도 택배 없는 날을 통해 가족과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원씨는 “숙식을 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워 14일부터 3일 내내 집에서 오전 9시에 나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출근했다”며 “아내는 파라솔 아래서 쉬고, 저는 아들 악어튜브 태워 주며 그동안 못 놀아 줬던 것까지 다 놀아 주려 했다”며 웃었다. 원씨는 3년째 통증을 느꼈지만 바쁘단 이유로 미뤘던 병원도 17일 방문했다. 병원은 왼쪽 팔꿈치 인대가 많이 부었다며 물리치료와 약물 복용을 권했다.

“과로사 막기 위한 쉴 권리 보장해야”

택배 없는 날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해 택배 노동계는 택배 없는 날을 택배사에 공식 요구했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관계에 있는 것은 택배 대리점”이라며 “택배사가 택배기사들의 휴가를 보장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2020년 택배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배경에는 택배노동자 과로사와 과로사 추정 죽음이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택배노동자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다. 노조는 정부에 공식 집계되지 않은 과로사 추정 죽음을 합하면 10명 넘는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고 본다.

원영부씨는 “일부 노조 조합원 가입률이 높은 일부 터미널의 경우 주 5일제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현장은 주 6일 근무를 하고 있다”며 “휴가뿐 아니라 주 5일제 정착을 통해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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