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비정규 노동자를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비정규직 고용안정 의지를 천명했지만 민간부문은 요지부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선·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300명 이상 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

고용노동부가 9일 발표한 ‘2020년 고용형태공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300명 이상 기업은 3천520곳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500만2천명으로 집계됐다.

고용형태공시 제도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노동자의 고용구조를 개선하도록 유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2014년 도입됐다. 300명 이상 대기업의 직접고용 정규직·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매년 3월31일 상황을 기준으로 발표한다.

올해는 대상 기업 전체가 고용형태를 공시해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공시율 100%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직접고용 인원은 408만9천명(81.7%)이다.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를 의미하는 소속 외 노동자는 91만3천명(18.3%)으로 나타났다.

직접고용 노동자 중 비정규직으로 볼 수 있는 기간제와 무기계약 단시간 노동자는 각각 92만4천명과 8만6천명이다. 이들과 소속 외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비정규직은 192만3천명(38.4%)으로 계산된다.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비정규직 비율은 2017년 40.3%였다가 지난해는 38.5%로 소폭 떨어졌다. 올해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38.4%)으로 나타났다. 민간부문에서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진전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단시간 노동자는 인원·비율이 모두 소폭 감소했지만 소속 외 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가 늘어 전체 비정규직 비율이 정체했다. 소속 외 노동자는 지난해 88만1천명(18.1%)이었지만 올해는 91만3천명(18.3%)으로 나타났다. 기간제는 지난해 88만6천명(22.3%)에서 올해 92만4천명(22.6%)으로 늘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비율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났지만 특별한 이유나 사건이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고용구조가 나빴다. 1천명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46만9천명이다. 이 중 비정규직은 139만2천명(40.1%)이었다. 공시 대상 기업 평균 비정규직 비율(38.4%)보다 높다.

문재인 정부 민간부문 비정규직 대책 단 한 번도 추진 안 해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추세가 개선하지 않는 데에는 정부 무대책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2017년 10월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원회는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한 사유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단 한 번도 관련 대책 추진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4월 총선공약에 ‘사용사유 제한’을 포함했지만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의 분위기가 이를 보여준다.

노동부 또 다른 관계자는 “사용사유를 제한해 비정규직 진입 폭을 좁히자고 말하는 순간 코로나19 국면,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일각의 반발 사태와 겹치면서 거센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책방향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갈등관리 차원에서 일부러 지금 끄집어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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