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후 국회 앞 성암산업노조 천막농성장. <어고은 기자>

‘분사매각 반대’를 외치며 노동자 145명이 집단 단식농성을 했던 포스코 하청회사 성암산업 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성암산업노조(위원장 박옥경)가 ‘1년 내에 1개사로 통합한다’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지난 3일 자정께 단식을 중단했다.

5일 금속노련(위원장 김만재)에 따르면 문성현 위원장 중재에 따라 포스코와 노조는 지난 3일 성암산업의 작업권을 사들인 5개 협력사와 포스코의 하도급 계약기간이 끝나는 2021년 6월30일 이전에 ‘작업권 쪼개기’ 이전의 형태로 돌려놓기로 잠정합의했다. ‘분사 없는 매각’을 1년 뒤로 미룬 셈이다.

노사는 5개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조합원들의 임금과 복지 등 노동조건과 관련해 협상을 할 계획이다. 협상에는 연맹과 포스코, 신설 협력사 포은에서 추천한 인사가 참여한다. 협상 기한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노사는 ‘빠른 시일 내’ 합의하기로 정리한 상태다. 김준영 연맹 사무처장은 “포스코가 관련 협의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조합원 단식 5일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단식 10일째던 지난 3일 오후 문성현 위원장이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찾아 김만재 위원장과 박옥경 위원장을 만났다. 문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단식 중단을 설득하며 중재안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문 위원장 방문 이후 노조는 격론 끝에 중재안을 받아들인 뒤 단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노동자들은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국회 앞 농성을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이다.

“청춘 다 바쳐 일했는데 허탈,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 가라는 게 고용보장?”


노동자들이 집단 단식이라는 극약처방까지 감내한 원동력은 ‘분노’다. 그 일단을 지난 3일 만난 조합원들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5일째 이어진 단식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정년을 6개월 앞둔 A(60)씨는 “해고된 지난 1일이 입사한 지 만 30년 되는 날이었다”며 “청춘을 다 바쳐 일했는데 돌아오는 대우가 이렇다는 게 참 허탈하다”고 말했다. A씨처럼 올해 정년을 앞둔 조합원은 145명 가운데 5명이다. A씨는 “돈도 필요없어요. 권리를 찾아야죠”라며 “억울해서 서울 와서 이렇게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암산업에서 24년간 일했다는 B(57)씨도 “20년 넘게 매일 출근하던 곳에서 갑자기 출근하지 마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B씨는 “지금 시간(오후 2시)이면 코일을 싣고 공장으로 달리고 있었을 텐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무전기 소리가 귀에 맴도는데 하루빨리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성암산업 노동자들은 6월30일부로 해고된다는 내용의 해고예고통지서를 지난 5월7일 받았다. 성암산업은 “전적에 동의하면 고용승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 5개사로 전적한 경우 연봉이 1천5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전적한 동료들에게서 “후회한다”거나 “이직을 다시 준비한다”는 말이 벌써 들린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계약해지를 당한 뒤 다시 성암산업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는 C(34)씨는 “고용보장은 생활보장 아니냐”며 “노예도 아니고 그냥 일만 할 수 있게 해 줄 테니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로) 가라는 게 진짜 고용보장이 맞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암산업만의 문제 아냐
“단협·고용 승계되도록 법·제도 마련해야”


협상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사 포스코에 대한 하청노동자들의 뿌리 깊은 불신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포스코와 성암산업노조가 2018년 2월5일 “분사 없는 매각이 이뤄지도록 상호 노력한다”는 협약서를 작성했지만 이행되지 않은 탓이다. 노동자들은 “포스코 사내하청사 노조 가운데 인원도 많고 단결력이 큰 성암산업노조를 와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연맹에 따르면 2017년 포스코가 노조설립을 이유로 ㈜성광과 계약을 해지해 회사는 폐업하고 노동자들은 여러 사내하청사로 찢어져 전적했다. 포스코케미칼 협력사 ㈜세강산업 노동자들은 지난해 포스코케미칼이 계약 종료를 통보한 이유가 노조설립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본지 2019년 11월28일자 1면 “하청에 노조 생기면 사장 바꾸고, 말 안 들으면 회사 공중분해?” 참조> 금속노련은 “포스코가 하청업체 자체의 분할과 통합을 반복하면서 사내하청사 노조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는 포스코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사가 협상 재개라는 물꼬를 텄지만 제2 성암산업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하청노동자의 고용·단체협약 승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청사 분사매각 이슈가 비단 성암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분할시 고용·단협승계 등을 보장한 제도가 없는 탓에 노동자들은 사법부 판결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하청노동자는 분할매각 등으로 고용불안에 상시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쟁과 협상을 통해 이끌어 낸 임금·단체협약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릴 수 있다. 문성현 위원장이 중재자로 나서며 2018년 협약보다 추후 구체화될 합의에 무게감이 실리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매번 협력사 노조와 원청사 간 문제를 정부 중재로만 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태교 금속노련 조직국장은 “분할 자산매각은 고용과 노동조건 승계의무가 없다는 맹점을 기업들이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분할시에도 단협과 고용이 포괄적으로 승계될 수 있도록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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