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지난 17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에서 조속한 전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이 출입문을 막고 있다. 농성 모습이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언니야, ○○이 혈압약 하고 언니 바르는 약하고 들고 왔으니까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

남색 노조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 서너 명 중 한 명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유리문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어깨를 붙이고 서서 문을 지키는 경찰들 너머에 ‘언니’가 보이는지 중년 여성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여성이 대신 그녀를 맞았다.

“너들은 괜찮나?” “얘도 지금 상태 안 좋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여성들은 건물 안과 밖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물품을 건넨 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난 17일 정오께. 경상북도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뒷문 풍경이다.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250여명이 지난 9일부터 공사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 민주일반연맹과 인천일반노조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자회사 방식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다 올해 7월1일 해고된 1천500명 중 일부다. 본사 건물 주변에도 민주노총 소속 해고 요금수납원 80여명이 곳곳에 텐트를 치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 소속 해고 요금수납원들도 평균 400여명 정도가 이곳에서 노숙농성에 동참하고 있다.

“도로공사 본사 건물 봉쇄, 직원도 지하 주차장으로 출입”

공사 본사 건물은 경찰로 둘러싸여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상태다. 정문은 폐쇄됐고, 뒷문은 방패를 든 경찰이 접근을 막고 있다. 본사 직원은 건물 옆쪽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입했다. 본사 관계자는 “우리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가야만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며 “사원증이 없으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는 셔터가 반쯤 내려져 있었고, 입구 인근엔 10명이 채 안 되는 경찰이 출입을 통제했다. 기자가 건물 안에 들어가려 하자 경찰은 “외부인은 본사 홍보팀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본사 홍보팀 관계자는 “기자를 포함한 모든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일반인(주민)들과 직원이 사용하는 건물 내 수영장도 문을 닫은 상태”라고 전했다.

건물 안 농성자들은 오전 10시와 오후 5시,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뒷문을 통해 들어가는 반찬과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 생필품을 전할 때도 경찰을 사이에 두고 안팎의 조합원이 물건을 주고받았다. 건물 밖에서 집회를 할 때는 건물 안 농성자들이 경찰 뒤에서, 혹은 경찰 사이를 비집고 나와 경찰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건물 밖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해고자들은 하루 두 끼만 먹는다. 급여도 없이 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이들은 항상 돈에 쪼들린다.
 

▲ 건물 밖에서 집회를 하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본사 건물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기 안 들어오고 환기·청소도 안 돼”

건물 안 농성자들은 기본생활 유지가 어려운 상태다. 민주연합노조에 따르면 건물 안 농성자들은 2층 로비를 점거하면서 2·3·4층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3·4층 화장실엔 추석연휴 때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농성자들은 플래시를 켜고 씻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화장실과 로비는 비위생적이고 환기도 안 된다”며 “감기 걸린 이들이 다수”라고 상항을 전했다. 그는 “16일 밤 10시께 조합원 한 명이 고열과 어지럼증으로 119 응급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

노조 또 다른 관계자도 “점거농성 초반에는 담요·깔개 반입도 금지해 쌀쌀한 날씨에 맨 바닥에서 자야 했다”며 “16일에는 (병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쌍화탕도 못 들어가게 했다가 또 한바탕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옆에서 듣던 한 조합원은 “그렇게 위험한 게 걱정되면 화장실에 불이라도 넣어 주든지”라고 비죽였다.

본사 건물 밖 텐트 앞에 앉아 있던 한 조합원은 “건물 안에서 농성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 17일 오전에 밖으로 나와 병원에 갔다”며 “건물 안에 전기가 끊어지고 환풍기도 안 돌아가 공기가 엄청 좋지 않고 청소도 안 돼 포진에 걸린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의 발목과 발등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는 “건물에서 한 번 나가면 안에 다시 못 들어간다”며 “동료들이 안에서 고생하는데 나만 쉴 수 없어 병원에 갔다가 바로 농성장에 다시 왔다. 아파도 계속 이 자리(농성장)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건물 밖 농성자들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쉬는 시간에 천막이나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농성자들은 “여기 건물 밖에 있는 몇백 명이 화장실 고작 몇 개로 같이 쓰고 있는데 휴지도 안 준다”거나 “밤에 이 건물은 20여층까지 전 층이 다 환한데 우리가 쓰는 전기는 다 끊어 버린다.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총도 없고 칼도 없고 빽도 없고, 할 줄 아는 건 노숙생활이에요.”

이강래 공사 사장 서울 집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넘어져 다쳤다는 한 조합원은 천막 아래서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읊조렸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옆 건물 벽면에는 너구리와 뱀과 쥐의 그림이 각각 붙어 있었다. 이곳 천막 농성자들이 붙인 그림이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또 다른 조합원이 답했다.

“뱀의 혀를 놀리지 마라 이거야. 그리고 너구리, 너구리의 습성이 뭡니까. 밤에만 나타나고 몰래 몰래 숨어 다니고, 응큼하고. 쥐새끼처럼 숨어서 나타나지도 않고.”

다리에 깁스를 한 조합원이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는 이길 때까지 싸울 겁니다. 투쟁!”

천막 주변에는 ‘일하고 싶다’ ‘해고는 살인’ ‘직접고용 서둘러라’ 같은 글씨가 적힌 깃발과 현수막·대자보가 셀 수도 없이 붙어 있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9일 노조 조합원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한 날 전 직원이 집에 가지 못하고 건물 안에서 잠을 잤다”며 “건물 내 출입문을 용접해 막기 전인 추석연휴에도 직원 3분의 1 정도씩 돌아가면서 근무하며 건물을 지켜야 했다”고 귀띔했다.

▲ 본사 건물 밖에서 농성하는 수납노동자들이 선전물을 만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톨게이트 해고 요금수납원들은 왜 공사 본사를 점거했나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에서 일하다 해고된 요금수납원들이 해고자 전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세 달 가까이 노숙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해고 요금수납원 1천500명 중 민주노총 소속 요금수납원 250여명은 18일로 10일째 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왜 농성을 하고 있을까.

요금수납원은 협력업체 소속이던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2015년 1심과 2017년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사건은 2년가량 대법원에 계류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발표했다. 도로공사는 전체 6천500명 규모의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자회사를 세워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자회사 전적을 거부한 1천500명은 올해 7월1일 협력업체 위탁계약 해지로 해고됐다.

일자리를 잃은 요금수납원들은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와 청와대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실제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고 요금수납원들은 해고자 1천500명 전원을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도로공사는 대법원 승소 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 비동의자와 고용단절자 등 최대 499명을 직접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나머지 해고 요금수납원들은 모두 1·2심에서 근로자지위를 다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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