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지노조
지난해 6월15일 대법원은 특수고용직인 학습지교사가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이 노조할 권리를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낸 지 7년, 대법원에 계류된 지 4년 만이었다.

대법원 판결 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노동 3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못한 듯하다. 학습지노조(위원장 오수영) 재능교육지부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지 1년이 지난 21일 현재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교섭은 지지부진하지만 그렇다고 쟁의행위를 하기도 쉽지 않다. 1999년 노조설립 초기 3천800명 수준이던 조합원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 지부는 단협 유효기간인 2년마다 갱신을 요구했지만 2000년 지부 파업 뒤 맺은 첫 단협은 그 뒤 18년 넘는 기간 동안 네 번 갱신했다. 5년에 한 번꼴이다. 최근 단협도 2014년 맺고 5년째 그대로다. 대법원 판결 전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판결 뒤에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노조를 상대로 사측이 교섭을 해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기법상 근로자 아니라서 타임오프 못 준다는 재능교육

무엇 때문에 교섭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걸까. 재능교육과 노조 간 교섭 쟁점은 4개다. 미합의 쟁점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인정 △수수료 지급 관련 문제 △부정영업진상조사위원회 설치 △단협 효력 유지기간이다. 노조활동과 관련돼 있다.

사측은 "회사는 교섭을 해태할 생각이 없다"며 "네 개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기 위해 대표교섭위원들 간 일대일 면담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대법원 판결 이후 사측과 간사협의·대표교섭위원 면담에 응했지만 사측은 교섭일정을 잡고 교섭 의제를 설정하는 것을 거부했다"며 "사측은 노조가 교섭해태로 노동부에 진정할까 우려해 간사협의·대표교섭위원 면담 등을 내세워 시간끌기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타임오프를 두고 노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타임오프 제도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도입했다. 노조활동을 위한 일정 시간을 임금손실 없이 노동시간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재능교육 관계자는 "근로시간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은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것"이라며 "선생님들은 자유소득업자"라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시간을 책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김종진 공인노무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타임오프 제도는 노조법상 존재하는 규정으로 노조법상 근로자 전반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업무시간이 근로시간이 아니라는 해석은 '소정의 근로'를 지엽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법 24조는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인데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도 타임오프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비스연맹 법률원이 지난해 12월 "수탁계약을 체결한 근로자(택배기사)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근로시간면제 관련 약정을 체결할 수 있는지"를 노동부에 물었는데 노동부는 인정하는 취지로 회시했다. 노동부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는 사용자와 노조법 2조1호에 따른 근로자(노조법상 근로자 정의)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나 합의내용과 그간 통상의 노무제공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됐다면 타임오프 시간을 노사협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몬·대교 "교섭하려면 판결 가져오라"

다른 학습지교사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학습지 회사들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재능교육에 국한된 것이라며 노조와 대립하고 있다. 노조는 대교와 교원구몬을 상대로 지난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두 회사는 자사 학습지교사가 노조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노조 구몬지부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원구몬 교섭요구사실 공고 시정신청을 접수했지만 노동위는 구몬지부가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법상 노동자 여부에 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교원구몬에는 노조가 학습지노조밖에 없어 노조의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할 필요가 없는 사업장이라고 판단했다. 노조 대교지부의 경우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에서 모두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했지만 회사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김종진 노무사는 "노조법상 노동자 정의가 구체성이 떨어져 사용자는 사안마다 노동자성을 판단해 보겠다는 태도를 갖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교섭이 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조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노조법 2조1항은 노동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은 노동계의 오랜 요구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보장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노동자 정의를 넓힌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수영 위원장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퇴직금·4대 보험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누리지 못해 저임금 노동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먼저 노조법을 개정하고,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인정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대교·교원구몬·웅진씽크빅·한솔교육·재능교육·한국몬테소리 등 주요 학습지 회사에서 일하는 학습지교사는 4만3천명 정도다. 이 중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한국노동연구원은 3월 현재 우리나라 특수고용 노동자가 최대 221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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