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31일 충남 천안 사방댐 건설현장 레미콘 믹서트럭 전복사고 현장. <법무법인(유) 현>
지난 5월31일 충청남도 천안 사방댐 건설현장에서 A씨가 자신의 레미콘 믹서트럭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비포장도로 경사에 세워진 믹서트럭이 A씨 방향으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조사는 물론 현장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할 현장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유가족은 건설현장 안전관리 책임자를 찾아 그 책임을 물어 달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법률 전문가와 노동계는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레미콘·덤프·굴삭기 등 27개 건설기계에 대해서도 원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가족 “안전조치 안 한 현장책임자 처벌해 달라”

7일 건설업계와 법무법인(유) 현에 따르면 A씨 유가족이 지난달 20일 천안동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가족은 고소장에서 “사방댐 건설현장은 기존에 산사태가 일어난 곳이고 약한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지형”이라며 “공사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레미콘 믹서트럭이 안전하게 정차해 작업할 수 있도록 포클레인으로 평탄하고 견고하게 지반을 다져 놓은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은 △안전한 작업을 위한 평탄하고 견고한 장소 마련 △유도자 또는 감시자 배치 △하중에 따른 기초지반 변형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를 취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현장책임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가 사고를 당한 사방댐 건설현장은 산사태 긴급복귀 공사가 이뤄지던 곳이다. 공사는 천안시가 발주하고 천안시산림조합이 수주했다.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오빛나라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현장책임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천안시산림조합을 책임자로 특정하려 했으나 천안시가 시멘트 자재 공급계약을 따로 체결한 상태라서 책임자를 특정해 달라고 경찰에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 제대로 안전조치가 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기에 무거운 레미콘 믹서트럭에 깔려 육체적·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 사망했다”며 “현장책임자의 범죄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엄중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30년간 한 회사와 계약하고 업무지시 받았는데

정부는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하며 건설공사 도급인(원청)에게 건설기계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는 원청 책임 대상을 건설기계의 경우 타워크레인·건설용 리프트·항타기·항발기로 제한했다. 굴삭기·이동식 크레인·레미콘 등 사고 위험이 높은 27개 건설기계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는 배경이다. 천안 사방댐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고용 노동자는 보호대상이 아니기에 노동부 중대재해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입법예고안대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이 개정되면 레미콘 등 사고 위험이 높은 건설기계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노동부 중대재해조사나 산업재해율 조사 등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돼 있다”며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사망이 신고되지 않거나 은폐·누락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책임자가 공정과 설계대로 안전한 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하는데 현장책임자 역시 시공사에서 채용한 비정규직이 맡고 있다”며 “발주처(원청)가 적어도 자신이 발주한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레미콘 믹서트럭 노동자의 노동자성도 논란 중 하나다. A씨의 경우 레미콘 전문업체인 ㅁ사와 매년 운반계약서를 쓰고 30년간 일했다. A씨는 ㅁ사에서 정한 출퇴근 시간에 따라 맞춰 일했고, 마지막 물량을 운반하고 나서는 회사로 복귀했다. 결근하는 날에는 회사에 사전에 통보하고 휴무기간을 상의했다. A씨는 레미콘 믹서트럭에 ㅁ사의 로고와 전화번호를 도색해야 했고, 보수는 1개월분을 정산해 일괄 지급받았다.

오빛나라 변호사는 “A씨는 ㅁ사와 30년간 레미콘 운반계약을 체결하고 회사가 결정한 업무내용을 그대로 수행했다”며 “과거 법원은 레미콘 믹서트럭 기사를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했지만 계약 특성과 노동조건을 볼 때 근기법상 근로자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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