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 7월 서울지역 한 디자인회사에 입사한 김민경(가명)씨는 면접에서 “야근이 많은데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회사가 제시한 연봉 2천만원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입사해서 실제 일해 보니 야근이 너무 많았다. 밤 12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새벽 4시30분까지 일한 적도 있다. 그는 회사에 연장근로수당과 야근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그런데 “포괄임금제가 명시된 근로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민경씨는 직장갑질119의 도움을 받아 고용노동부에 진정한 끝에 시간외수당 313만원을 돌려받았다.

노동시간·공짜노동 폭증

직장갑질119가 2일 분석한 김씨 근무기록을 보면 입사한 7월부터 지난달까지 22주 동안 261시간49분을 초과근무했다. 22주 중 한 주를 제외하고 모두 40시간 이상 일했고, 9주는 52시간을 넘겼다. 일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53조1항 위반이다. 사용자가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기법 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1항도 어겼다.

그런데 김씨가 다니던 회사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게 되면 사용자의 위반사항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근기법 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르면 취업규칙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경우 2주간 근로시간을 평균해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는 4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탄력근로 48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면 김씨는 최대 주 60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된다.

직장갑질119 분석에 따르면 이 조항을 적용하게 되면 김씨의 회사 사용자가 근기법 53조를 위반한 기간은 9주에서 3주로 줄어든다. 단위기간을 3개월로 하면 사용자의 법 위반 내역은 더 줄어든다.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가 서면합의해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 3개월 동안 평균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을 52시간, 특정한 날은 12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연장근로를 포함하면 일주일에 최대 64시간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김민경씨 회사 사용자가 근기법을 위반한 기간은 9주에서 1주일로 줄어들게 된다.

떼인 임금 돌려받기도 어려워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2주 단위기간은 주 48시간, 3개월 단위기간은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만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단위기간을 평균해 1주 노동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김민경씨의 경우 입사한 뒤 22주 중 1주를 제외하고 주 40시간을 넘겨 일했다.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실시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것처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늘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늘어난 단위기간만큼 회사가 평균 주 40시간을 유지하게 되면 김씨 회사 노동자들이 포괄임금제로 피해본 임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호현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탄력근로제는 ‘포괄임금약정은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법리를 무력화할 여지가 있다”며 “회사가 탄력근로제 시행을 요구한다면 동료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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