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봄기운이 완연한 서울 광화문광장이 초록빛 손피켓으로 일렁였다. 손피켓엔 ‘최저임금 1만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때마침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우뚝 솟은 노조 깃발이 바람을 타고 춤을 췄다. 노동자들의 시선은 광화문 앞 도로 너머에 세워진 연단으로 향했다.

초록빛 연단 앞면엔 "노동의 봄을 열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민주노총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에서 △최저임금 1 만원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재벌개혁을 요구했다. 전국에서 2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함께했다.

"지긋지긋한 공포의 시간 끝내자"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금속노조·건설노조·전교조·민주일반연맹이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인근에서 사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에 중형조선소 회생정책과 교원의 노조할 권리와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노조들의 주장과 발언자들의 의견은 “봄은 왔지만 노동자에게도 봄은 왔는가”라는 물음으로 요약된다. 앞의 봄은 계절 변화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것을 뜻한다.

최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보고된 장기투쟁 사업장은 75곳이다. 지난해보다 10곳 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주최측은 장기투쟁 사업장 4곳의 상황을 무대 위 대형스크린 속 영상과 발언으로 소개했다. 민주일반연맹 중부일반노조 춘천지부·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금속노조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가 그들이다.

춘천지부는 춘천시 환경사업 민간위탁과 집단해고에 맞서 160여일째 천막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김재주 전 택시지부장은 지난해 9월4일부터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올라 사납금제 폐지와 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는 회사가 올해 초 단행한 비정규직 집단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다. 쌍용차에 해고자 130명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네 번째 단식농성 중인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스크린 위로 야윈 모습을 드러냈다.

“기만적인 사측의 약속을 믿고 목 빠지게 복직을 기다리는 동료들의 눈을 더는 쳐다볼 수 없다. 선택할 단 하나의 말과 단어도 남아 있지 않다. 2009년 파업 이후 얼마나 많은 곳에서 굶고 싸우고 투쟁했나.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생활은 추락했고 건강은 악화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공포로 물들어 가는 이 지긋지긋한 시간을 끝내야 한다.”

"이명박과 함께 타임오프도 감옥 가야"

봄은 왔지만 봄이 멀게 느껴지는 이들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참외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민에서 운동가가 된 이종희 소성리 사드철회 주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이종희 공동위원장은 “사드배치는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결정이 아니었고 통일과 대척점에 있는 반통일적인 결정이었다”며 “촛불혁명으로 다른 적폐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사드는 보란 듯이 소성리 주민들을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노총 강령이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강렬하게 싸우라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소성리 주민과 민주노총 활동은 궤를 같이한다”며 “동지들이 소성리 주민들의 투쟁에 힘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주요 산별노조 대표자들의 발언으로 본행사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이달 초 국내에 몇 안 남은 중형조선소인 성동조선해양을 법정관리하고 STX조선해양에 정규직 인력 40%를 줄이라고 통보했다. 비슷한 시기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를 중국 자본인 더블스타에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경영진의 부실경영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생긴 문제가 분명한데도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있다”며 “노정교섭을 하자고, 대화를 하자고 요구했는데 금호타이어의 경우 더블스타로만 매각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고, 오히려 정부 스스로 노동 3권을 부정하는 ‘파업해서는 안 된다’는 양해각서를 뒤에서 합의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계획 철회를 위해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한국지엠지부와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문재인 정부와 담판을 지어 벼랑 끝에 내몰린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켜 내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맞아 그의 재임기간에 마련된 노조전임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보건업을 포함한 5개 업종을 근로시간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으로 남겨 둔 것과 관련해 "환자를 위험하게 하고 간호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환자가 감염과 화재로 죽고 간호사가 힘에 겨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병원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특히 “이명박이 시행한 타임오프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도입 후 노조 전임자가 34% 줄었고,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노조활동이 더 어려워졌다”며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받은 이명박이 감옥에 갔으니 교섭창구 단일화와 타임오프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나태함에 파열구를 내자"

중간중간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노래패 ‘우리나라’와 ‘노래로 물들다’가 각각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렀다. 노동자들은 '가자! 노동해방'을 합창했다.

민주노총 이날 대회를 기점으로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해 “을과의 연대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연대사를 통해 “자영업자가 겪는 고통의 본질은 독점재벌들의 중소시장 파괴와 대리점·가맹점 수탈,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고율의 카드수수료, 무절제한 임대료 인상이며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우리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 회장은 “자영업자·청년·남녀노소 계급계층을 망라해 지배자가 노리는 것은 우리들의 분열과 분리”며 “그들이 기생하는 언론권력·사회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공동 투쟁전선을 구축해 가자”고 제안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최저임금 제도개악을 막아 내고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약속이 말의 성찬으로 그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나태함에 분노의 파열구를 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 모든 희망을 걸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걸음에 모인 오늘 이 자리부터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적폐청산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투쟁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광장에 거대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줬다 뺏는’ 최저임금 개악 중단 △일방적 구조조정 즉각 철회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했다. 이들은 “노동적폐 철폐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2018년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공식행사는 2시간 만인 오후 5시께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민주노총가'를 제창한 후 광화문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광화문 앞길을 거쳐 종로경찰서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했다. “문제는 재벌이다, 재벌을 개혁하자” “꼼수를 막아 내고, 1만원을 실현하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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