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연구원
최근 조선·자동차산업 구조조정으로 고용불안이 커지면서 노사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자칫 2009년 구조조정 이후 10년째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표적 장기투쟁 사업장인 KTX 승무원·세종호텔·콜트콜텍 사례를 통해 장기 노사분규를 예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노동연구원(원장 배규식)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회장 이병훈) 공동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산업 구조조정기, 장기 노사분규 예방을 위한 대안 모색' 토론회다. 전문가들은 "장기분규로 인한 갈등이 사업장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장기분규가 발생하는 원인과 대안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부문 노사갈등 제3자 조정 필요"

올해로 13년째 이어지고 있는 KTX 승무원 분규 원인은 무엇일까. 유병홍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공공기관 외주화 정책에서 출발했다"고 진단했다. 2004년 4월1일 KTX 개통을 앞두고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은 홍익회(현 코레일관광개발)에 열차 내 고객서비스업무를 위탁했다. 승무원들은 홍익회와 고용계약서를 쓰면서 철도공사 직접고용을 약속받았다. 2005년 철도공사가 출범하자 여승무원들은 '채용시 철도공사 직접고용 약속을 이행하라'며 투쟁을 시작했다. 장기분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유 연구위원은 "당시 공공부문 규모를 제한하려는 정부정책에 따라 코레일이 여객 승무서비스업무를 외주화한 게 KTX 여승무원 장기분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이런 정부정책 때문에 코레일의 자율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공공부문 분규는 정부가 정책적 판단을 통해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KTX 여승무원 장기분규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생명·안전 관련 업무 직접고용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3자 조정' 해법도 제안했다. 그는 "KTX 여승무원의 경우 채용 당시부터 정규직 고용·처우에 대한 노사 간 인식차가 커 갈등소지가 많았다"며 "이렇게 노사 인식차가 클 때는 전문가 등 제3자가 참여해 인식격차를 줄이고, 조정·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가동되고 있는 노·사·전문가 협의회가 대표적이다.

"사용자의 복수노조 악용, 장기분규 요인"

2011년부터 8년째 노사가 맞부딪치고 있는 세종호텔 분규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용자의 태도와 불공정한 인사관행이 장기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2011년 7월1일 세종호텔에 세종연합노조라는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120명의 조합원이 세종호텔노조를 탈퇴해 세종연합노조에 가입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유로 세종호텔노조와 진행하던 임금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호텔측은 직원 과반수를 조직한 세종연합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공고했다. 하지만 사실상 교섭권은 세종호텔노조에 있었다.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낸 단체교섭응낙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그해 12월 단체교섭이 재개됐지만 사용자의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이 결렬됐다. 이듬해 1월 세종호텔노조는 38일간 파업을 했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 이탈이 이어졌다. 호텔측은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만 전보배치하거나 임금삭감·해고 등 불이익을 줬다. 현재 15명의 조합원이 피케팅과 목요집회를 열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세종호텔 사례를 분석한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복수노조 제도는 원칙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결사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지만 세종호텔처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이 경우 장기분규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복수노조 문제는 형식인 규정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고용노동부가 원래 목적을 벗어나 악용되지 않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지도하고, 필요한 경우 법 개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노사갈등 초기부터 행정지도해야"

콜트콜텍은 KTX 여승무원 사태와 더불어 국내 최장기 분규사업장 중 하나다. 기타제조업체인 콜트콜텍은 국내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2007년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12년째 천막농성과 국회 앞 1인 시위, 광화문 문화공연 등 캠페인 형식의 시위를 이어 오고 있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콜트콜텍의 장기분규 원인으로 노사 간 낮은 신뢰수준과 외부연대를 지목했다. 송 전문위원은 "사용자는 노조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반노조 전략을 구사했고, 노조는 더욱 강하게 저항했다"며 "외부연대는 노조가 장기간 투쟁을 이어 갈 수 있었던 동력이었지만, 결과으로 투쟁 장기화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흥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사례에 기반에 노·사·정에 장기분규 예방을 위한 대처방안을 제안했다. 노조에는 교섭전술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노조는 투쟁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현실적 타협안을 가지고 교섭에 임해야 한다"며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하는 전술은 노조에 명분은 줄 순 있지만 현실성 낮은 전술"이라고 말했다. 사용자에게는 정리해고와 비전문적 컨설팅을 지양하라고 조언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는 갈등 초기 단계부터 노사가 중재와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행정지도해야 한다"며 "특히 노사갈등 과정에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발견됐을 경우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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