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추위가 이어진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임시건물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버스정류장 전광판에 추위 관련 안내문구가 나오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인천 계양구 환경미화원 장경술(54)씨는 최근 발에 동상이 걸려 새끼발가락 발톱이 빠졌다. 장씨는 "안전화를 신어도 너무 추워 보온이 제대로 안 된다"며 "겨울이면 손가락·발가락에 동상 걸리는 건 일상이지만 요즘 날씨는 상상 이상"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장씨는 체감온도가 섭씨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 28일에도 저녁 7시부터 29일 오전 9시30분까지 일했다.

그는 "쓰레기를 수거차에 실어 하치장에 보내고 나면 들어가서 쉴 곳이 없어 밖에서 그냥 떨고 있다"며 "식당에서도 잘 안 받아 주기 때문에 보온도시락이라도 싸 오지 않으면 밥을 제대로 못 먹고 따뜻한 물 한 잔 마실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핫팩 없으면 일을 못해요." 경기도 여주에서 택배일을 하는 정의수(49)씨에게 발바닥에 붙이는 핫팩은 출근 필수품이다. 택배터미널에서 택배분류와 상·하차 작업을 하고 있으면 30분도 안 돼 발이 얼어붙는다. 정씨는 "택배터미널에서는 단열기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스히터를 가지고 다니면서 겨우 손만 녹이는 정도"라며 "요즘 같은 날씨에서는 일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도 추위와 사투를 벌인다. 날씨가 추울수록 주문량이 폭주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정훈씨는 "한파특보가 발령된 날에는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주든지, 아니면 날씨수당이라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이은 한파에 한랭질환 위험=북극발 최강 한파가 이어지면서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장시간 추위에 노출되면 동상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저체온증 같은 한랭질환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혹한기 노동에 대한 법적인 규제나 대책은 없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폭염 때 사업주에게 옥외 노동자 휴식·휴게시설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을 뿐 한파 때 의무는 적시돼 있지 않다.

한랭질환 예방 가이드라인도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열사병 예방 3대 수칙(물·그늘·휴식) 이행가이드를 마련해 사업장에 배포하고,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옥외작업 열사병 예방 일제점검을 한 것과 대조된다. 대형사업장 정도에서만 지킬 뿐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는 지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래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핫팩이나 워머 같은 방한용품 제공은 사업주 재량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사비로 방한용품을 구매하거나 그냥 버틸 수밖에 없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보니 택배나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눈치를 무릅쓰고 건물 1층에서 짬짬이 몸을 녹인다.

집배노조 관계자는 "겨울철에는 평소보다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다"며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세 곳(중·서초·마포구)에 마련했다. 서울 장교동 휴서울이동노동자쉼터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하루 평균 44.5명이 이용했는데, 올해 1월 들어서는 60~80명까지 이용자가 늘었다"며 "다른 지자체에도 옥외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부 "가이드라인 만들 것"=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혹한기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며 "외국 사례를 검토한 뒤 최소한 올해 겨울이 가기 전에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지난 24일 처음으로 '한파로 인한 한랭질환 발생 위험경보'를 발령했다. 전국 건설현장 안전보건관리자네트워크·보건관리자협의체에 '한랭질환의 증상 및 응급조치 요령'과 한랭질환 예방 기본수칙 등을 내려보냈다. 작업 중 따뜻한 물을 제공하고 따뜻한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한파특보가 발령하면 보다 따뜻한 오후 시간대(오후 2∼5시)에 작업을 수행하도록 권고했다. 2월에 내놓을 혹한기 가이드라인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보다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기존에 나온 폭염대책처럼 두루뭉술하게 사업주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권고 정도로 나온다면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업주가 실제 이행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 의심이 간다"며 "한파가 지속될 경우 작업중지명령을 내려서라도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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