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인천 남부경찰서는 2016년 여자화장실 안에 청소노동자들이 휴식공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방치했다가 논란이 일자 폐쇄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3.3제곱미터(1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대걸레를 빨 수 있는 개수대까지 설치된 곳에서 쉬어야 했다. 인천 계양구 환경미화원 장경술씨는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겨울 휴게공간이 없어 고생했다. 장씨는 "더러운 것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서는 식당에 들어가기 힘들어 그냥 밖에서 떨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휴게시설이 턱없이 작거나 화장실을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등 제대로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산업현장에 배포한다. 노동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마땅히 쉴 곳이 없어 화장실·계단·건물 한쪽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환경미화원과 건설노동자, 백화점·면세점·마트 판매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 마련

노동부는 조만간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사업장에 배포한다고 4일 밝혔다.

근로기준법 54조(휴게)와 산업안전보건법 5조(사업주 등의 의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79조(휴게시설)·81조(수면 장소 등의 설치)·567조(휴게시설의 설치) 등 현행법에도 노동자 휴게시설에 관한 조항이 있다.

하지만 사업주에게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설치기준이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반드시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고열·한랭·다습 작업장 외에는 사업주가 휴게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고열·한랭·다습 작업장 외에 일반 시설은 휴게시설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다 보니 사업주가 조치하지 않더라도 지도할 수 있는 근거가 미약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휴게시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지난해 정혜선 가톨릭의대 교수팀에 '사업장 휴게시설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은 사업장에 휴게시설을 새로 설치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참고할 설치기준을 권고한 것이다. 설치대상 사업장과 설치 위치·규모, 공기·조명·소음 기준, 비품관리 같은 내용이 담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휴게시설은 작업공간과 인접한 곳에 있어야 한다. 작업장이 있는 건물 안에 설치하는데, 불가피할 경우 작업장에서 100미터 이내나 걸어서 3~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곳에 휴게시설을 마련한다. 공항·마트·호텔·백화점은 고객 휴게시설과 분리된 장소에 직원 휴게실을 설치한다.

휴게시설 면적은 최소 6제곱미터를 확보하고,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환기시설을 설치해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파나 등받이 있는 의자와 탁자, 냉장고·냉온풍기·정수기·식수·화장지를 비롯한 비품을 구비해야 한다. 휴게실 유지·보수는 지정된 담당자가 맡는다. 휴게시설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표지를 부착하고, 휴게실이 기자재나 청소도구 수납공간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휴게시설의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은 노사가 논의해 정하도록 했다.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수렴을 최근 마무리했다. 가이드라인이 완성되면 지방노동관서를 통해 전 사업장에 배포한다.

백화점·면세점 노동자에게 의자와 휴게실을

노동부는 이와는 별도로 이날 '판매직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수립·시행한다고 밝혔다. 백화점·면세점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족부질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백화점·면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도 쉴 수 있는 시간·공간이 부족해 족저근막염이나 무지외반증 같은 족부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지난해 대형마트 계산·판촉판매직, 백화점 직영노동자를 포함한 유통서비스 노동자 2천204명을 실태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35.4%)이 1개 이상의 직업병을 겪고 있었다. 디스크 질환(24.1%)과 족저근막염(22.2%)·방광염(18.2%)·하지정맥류(17.2%)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관리자들이 눈치를 주고, 노동자들도 앉아서 계산하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기업은 충분한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소비자들은 노동자들이 앉아서 계산하거나 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캠페인도 펼친다. 이달부터 47개 지방노동관서 주관으로 '의자 비치·앉을 권리 찾기·휴게시설 설치' 캠페인을 한다.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서서 일하는 노동자 건강가이드'도 배포한다. 9~10월에는 백화점·면세점을 중심으로 휴게시설 설치·운영과 의자 비치 여부 실태점검을 한다.

박영만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의자를 비치하고 노동자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업주 의무를 넘어 고객 인식전환이 중요하다"며 "홍보·캠페인과 지도·점검을 통해 배려문화를 확산하고 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호 조치가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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