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자력발전 정책의 여파가 노동계에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 같은 에너지를 친환경·신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이른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적극 찬성하거나,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환에 따른 고용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노동·고용과 환경 사이의 충돌은 오래된 문제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감하게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계도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오고 있다.

같은 상급단체 소속 노조도 찬반 나뉘어

공공운수노조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석탄·탈원전·청정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신고리 5·6호기 건설 타당성 검토 같은 정부 정책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는 공공운수노조 소속 발전노조·한국가스공사지부·환경에너지안전협의회가 참여하고 있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노조와 전국전력노조·한전KPS노조·한국전력기술노조·원자력연료노조·한국원자력연구노조는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고리 건설을 잠정중단하기로 한 한수원 이사회 결정을 비판했다.

정부 결정을 놓고 에너지 노동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일부 노조는 상급단체가 같은데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정책연대 주최로 이날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제안’ 토론회도 복잡한 에너지 노동계의 현실을 보여 준다. 에너지정책연대는 전력·가스·석유·석탄 관련 36개 에너지산업 노조가 참여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화력발전 정책을 공식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반면 에너지정책연대 공동의장단체인 한수원노조는 현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시 일자리 보장은 당연”
“단계적 원전 축소, 고용충격 크지 않아”


한수원노조를 포함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반발하는 쪽도 탈원전이나 에너지 전환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김병기 한수원노조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 참가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검토처럼 3개월만 잠깐 논의할 게 아니라 장기간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충분히 검토한 뒤 탈원전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고 단계적으로 추진된다면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수원노조에 따가운 시선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노조는 “고용불안 때문에 대정부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조가 고용효과와 세계 원전시장 진출을 이유로 신고리 5·6기 건설 진행을 주장하고,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등 탈원전 반대론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가 고용문제를 등한히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탈원전 등을 적극 지지하는 쪽 입장도 그렇다. 공공운수노조와 에너지사회네트워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전환은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에게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거나, 일자리 축소를 통해 노동자에게 비용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설계수명이 다 된 원전을 연장 가동하지 않고 모두 멈추면 60년 뒤인 2079년에 원전 제로가 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한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과)는 “고용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충분하고, 폐쇄 후 20~30년이 걸리는 관리에 필요한 인력과 해체작업시 창출되는 일자리까지 고려하면 고용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에너지 전환 의지 행동으로 증명해야”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변화를 통해 고용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곳을 가동 중단시켰다. 이에 대해 신현규 발전노조 위원장은 “지금 5개 회사로 쪼개진 발전사를 통합하면 가동 중단된 발전소 인력을 흡수해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개로 나눠진 발전사 체제에서는 가동 중단되거나 폐쇄한 발전소 노동자들을 고용할 여력이 떨어지지만, 발전사를 통합하면 고용흡수 여력이 커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수원노조를 포함해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노조들이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거나 에너지 전환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필렬 교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태양광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으로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은 “당장 한수원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인 대의에 함께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쉽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전력노동계 눈치를 보면서 탈원전에 미온적이었다가 사회적 비난을 받은 일본노조총연합회(렌고)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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