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10%대에 머물고 있는 노조 조직률, 극심하게 양극화된 노동시장. 노동계의 해묵은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조직해야 하고, 정규직노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실제 최근 안산지역 ㄴ공업에서 단협에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하기로 못 박고, 근속 2년 미만 직원의 상여금을 인상하는 등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품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당위로만 여길 뿐,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에서 실리적 성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산·시흥지역 제조업 정규직45% 
"비정규직에 임금복지 양보 반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비정규직 조직화 방안 연구 :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보고서 중간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연구는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기존 정규직노조의 역할을 모색하고자 이뤄졌다. 연구원이 금속노련 안산·시흥지역 19개 제조업 사업장 정규직 조합원 1천8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0%에 가까운 정규직들이 회사에 비정규직이 필요하지 않다(65.8%)고 답했다.

비정규직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 정규직들은 '마땅히 정규직 고용해야 한다'(4.32점, 5점 만점)는 문항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상당수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당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줬다.

정규직 10명 중 6명(59%)은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하는 일이 다르지 않고, 업무능력에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36.9%)는 답변이, 그럴 필요가 없다(32.7%)는 의견보다 많았다. 하는 일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하게 비정규직에 비해 정규직이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규직 노조의 대책으로 제시된 8가지 항목 중 정규직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안은 '연대의식 고취를 위한 조합원 교육'(49.2%)이나 '비정규직과의 연대행사 개최'(43.6%) 같은 낮은 수위의 활동이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노조에 가입시키기(42.8%), 비정규직 투쟁과 교섭지원(37.3%),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 결성 지원(33.9%),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한 교섭 진행(32.8%)이 그 뒤를 이었다.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이 임금과 복지 일부를 양보하는 것에는 45%가 반대했다. 임금·복지 양보에 동의한다는 정규직은 14.9%에 그쳤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 납부도 부정적인 의견이 35.8%로 "낼 의향이 있다"(19.9%)는 답변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절반에 가까운 정규직은 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정규직 노조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것(49.5%)'을 선택했다. 흥미로운 점은 설문에 참여한 노조의 규약과 단협을 확인해 봤더니 조사 대상 19개 노조 중 단 한 곳에서만 노조 규약과 단협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규약을 가진 곳은 두 곳에 불과했다.

"정규직, 연대의식 가지고 비정규직 조직해야"

이번 연구에 참여한 이상학 중앙대 강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한 원칙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당위적으로 비정규 노동자 처우 개선이나 조직화를 지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일부 나누거나 공유하는 문제에서는 강한 연대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강사는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와 노조가 연대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간발표회에 참여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에 대해 노조위원장이나 간부들, 정규직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인식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때 벌어질 수 있는 임금격차 문제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음으로 양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별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를 하기가 힘들다면 지역에 초기업단위 노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산별을 초월한 조직화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현미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음달 말께 나오는 최종보고서에는 한국 사업장 현실에 맞는 비정규직 조직화 정책과 방안을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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