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노동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핵심인력과 주변인력으로 나누고 이동통로마저 차단하는 분절적·경직적 노동체제를 포용적 노동체제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가 촛불민심을 일으킨 근본 이유 중 하나인 데다, 촛불민심이 새로운 정권 탄생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노사공포럼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 정부 노동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김장호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이날 토론회에서 “새 정부 노동정책은 경제적 효율성·사회적 형평성·정치적 민주성을 동시해 실현하고 균형을 찾아 나가는 포용적 노동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불평등·양극화에 무너진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김장호 교수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정치적 민주화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노동체제가 국가권위주의 체제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87년 이전 노동체제가 저임금·장시간 노동·전제적 노동통제·취약한 사회안전망·노동기본권 제약·배제적 노동정치를 특징으로 고도성장을 추구했던 시기라면 그 이후는 노동세력의 확장과 발언권 확대에 대응해 기업들이 자동화·외주화·생산기지 해외이전·고용형태 다양화 같은 전략을 추진했던 시기라는 설명이다. 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노동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가속화한 계기였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핵심인력인 내부노동시장과 주변인력인 외부노동시장으로 이중화했다. 정치와 사회 정책·제도는 노동시장 이중화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차별은 공고해졌고 양극화는 심화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부문별·특성별로 단절됐고 부문 간 이동통로가 좁아졌다”며 “분절적이고 경직적인, 그러면서 양극화한 노동체제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평등과 양극화,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극대화하면서 신자유주의 노동체제가 경제적 효율성·사회적 형평성·정치적 민주성 측면에서 모두 나쁜 지표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하고 기업 간·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했으며, 근로빈곤층은 늘고 가계소득은 침체해 다시 경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노조 조직률 확대 노동체제 전환 원동력

김 교수는 효율성과 함께 형평성·민주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포용적 노동체제로의 전환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분절되고 경직된 노동체제를 다양한 가치와 이해를 포용하는 노동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성장과 분배, 경쟁과 협력, 성장과 일자리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한다면 분배와 협동이 성장을 낳고 성장은 일자리를 낳으며 일자리는 다시 분배를 개선한다는 선순환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다”며 “정태적인 관점에서 성장과 분배가 경합적일 때도 있지만 동태적으로 볼 때 나쁜 분배는 성장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측면에서 성장과 분배는 경합하는 개념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 개혁의 화두처럼 자리 잡은 유연안정성에 대해서도 “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이 유연성과 안정성이 상충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노동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전제로 둘 사이의 교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인데, 이러한 교환전략은 과잉 유연화 상태인 우리 노동현실에서 적절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조 조직률 확대와 노동의 발언권 확대가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고 새로운 노동체제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특히 새로운 노동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공공운수노조가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삭감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혁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새 대통령이 균형적·중용적 시각을 견지하고 새로운 노동관을 표출하는 것은 노동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며 “노동체제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닌 만큼 학계와 시민사회, 노동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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