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에서 22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희준(55·가명)씨는 이달 중순 사내망에 올라온 직무성과계약서 체결 안내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개별적으로 직무성과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최저등급을 주고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임금을 깎겠다는 공사의 태도에 화가 났다”며 “불이익이 있더라도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에 성과연봉제 관련 위임장을 제출했다”며 “주변 동료들 중에는 공문 내용에 동요해 계약서에 서명한 직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거부하면 최저등급 부여, 경영평가급 지급 제외=부산교통공사가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인 1~4급 직원들에게 개별 직무성과계약서 작성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부산교통공사의 ‘2017년도 직무성과계약서 체결(안내)’에 따르면 직무성과계약 대상자는 부산지하철 1~4급 직원 1천36명이다. 공사는 일대일 면담 방식으로 개별 계약서 체결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서에는 “피평가자는 공사의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적합한 평가지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성실히 수행한다”는 내용과 “평가 결과를 연봉·평가급 산정 및 인사관리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사는 안내서에서 “성과계약서 체결을 명시적으로 거부할 경우 평가에서 제외하되 평가 결과는 최저등급을 부여한다”며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시 경영평가 미실시기관은 최저등급으로 간주, 평가급 지급을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직무성과계약서에는 △행정자치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최고등급 달성 △부산광역시 CEO 경영평가 최고등급 달성 △1호선 연장(다대구간) 관련 조직 효율성 증대 △동종기관 대비 최고의 인력효율 달성(주행거리당 인력 전국 평균 90% 이하 수준) 같은 내용도 포함됐다. 공사는 개별 성과계약을 이달 중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도 노조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했는데 도입 이후에도 협박과 강요로 일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조는 이미 계약서를 작성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이익 협박과 강요로 성과연봉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사실확인서를 받고 있다.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사항에 대한 모든 권한을 노조 위원장에게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받는다.

◇노조 무력화 뒤, 개별 성과연봉제 확정 꼼수?=공사는 지난해 7월 이사회를 열고 1~2급(정원 대비 2%)에만 적용되던 기존 성과연봉제를 4급(28%)까지 확대하는 안을 의결했다. 같은해 12월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시행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완료했다. 모두 노조 동의 없이 이뤄졌다. 공사는 올해 1년간 성과를 평가해 내년 연봉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공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한 성과연봉제의 불법성을 다툴 때 개별 계약서를 근거로 삼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며 “4급 이상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분리해 조직을 흔들려는 목적도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강민주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단순한 동의서가 아닌 개별 임금의 불이익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법률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는 지난 7일 노조간부 40명을 중징계했다. 노조가 지난해 세 차례 벌인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다.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국장·지부장 등 지부 핵심간부 12명을 해임하고 19명은 강등, 9명은 3개월 정직 처분했다. 노조는 이날 징계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징계위원회 재심은 청구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열린다. 노조는 “간부를 대규모로 징계해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것”라며 “재심에서도 징계가 확정되면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성과계약서에 개별 서명할 경우 향후 법적 판단을 통해 취업규칙이 무효화되더라도 성과연봉제를 계속 적용할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일부 중앙공공기관도 개별 성과계약을 추진했지만 모두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공사 관계자는 “내부 규정에 따라 1~2급이 작성해 온 기존 직무성과계약을 성과연봉 적용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4급까지 받는 것”이라며 “노조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법원에서 불법이라고 판단하면 시행이 중단될 것”이라며 “계약 대상만 조금 넓힌 것일 뿐 법원의 판단을 뒤집으려는 목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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