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의 또는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한 기관에 시행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첫 결정이 나오면서 본안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기획재정부는 향후 본안소송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면 이미 지급한 인센티브를 환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가처분 신청한 34곳 중 9곳 기각·5곳 인용

1일 노동계에 따르면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금융·공공부문 노조는 34곳이다. 이 중 9곳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고 5곳은 인용됐다. 20곳은 심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기재부는 119개 공기업·준정부기관 가운데 49개 기관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대전지법 민사 21부(재판장 문보경)는 철도노조·수자원공사노조를 포함한 5개 노조가 각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5개 공공기관은 본안소송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성과연봉제 시행이 중단된다. 지하림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가처분을 기각한 재판부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 임금손실이나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불분명하고 임금손실이 있더라도 회복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대전지법은 취업규칙 자체의 불이익변경을 분명히 인정했고 기재부 지침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여부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가 낸 가처분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은 “경제적 불이익이 현실화하는 데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고 그동안 조합의 동의를 얻거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여지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적어도 성과연봉제의 확대 시행 여부에 관하여서는 사측과 지부 사이의 자율적인 합의 가능성을 법원이 조기에 봉쇄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전지법은 “적용시점이 늦춰지는 동안 공공기관과 노조들은 취업규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성실히 협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헌법상 보장된 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며 “만약 가처분이 기각된다면 추후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완전히 손해가 전보되기(채워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전문가들은 대전지법이나 서울중앙지법 가처분 결정 모두 본안소송에 유리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김민표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신청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결정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대전지법 판결은 성과연봉제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라는 점, 기재부의 인센티브·페널티 지침은 외부적 사정으로 부수적 요인에 불과한 점,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는 점을 명시했다”며 “본안소송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무효 확정시 인센티브 환수

기재부도 소송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기재부의 ‘성과연봉제 후속 관리방안’에 따르면 기재부는 "인센티브와 페널티 부여를 통한 정부의 성과연봉제 이행 권고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도를 도입하라는 취지"라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 판결을 받게 된 경우 결과적으로 정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고 봤다. 부여한 인센티브를 환수하고 페널티는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기재부가 부여한 인센티브는 △조기이행 성과급 △성과연봉제 경영평가 배점 확대(1점→3점) △경영평가 가점 부여다. 페널티는 올해 인건비 동결과 임원 성과급 감액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도 이행기관으로 인정했지만 소송을 통해 무효가 된다면 법원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성과연봉제 폐기를 요구했다. 공공노련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와 사측은 이번 판결 취지를 엄중히 받아들여 현장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즉각 폐기하라”며 “재벌과의 추악한 뒷거래로 추진한 노동개악을 중단하고 사측도 불법 이사회로 개정한 취업규칙을 원상회복해 무너진 노사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인 성과연봉제를 끝까지 밀어붙이던 기재부의 막가파 행보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며 “대전지법의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결정은 박근혜 정부가 망친 공공기관과 사용자 편향으로 기운 노사관계 질서를 바로잡는 시작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청주지법 충주지원 민사부(재판장 정택수)는 한국가스안전공사노조가 제기한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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