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수자원공사를 비롯해 5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시행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회사는 성과연봉제 시행을 미뤄도 피해가 없지만 노동자들은 피해를 만회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31일 대전지법 민사 21부(재판장 문보경)는 철도노조·수자원공사노조·철도시설공단노조·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기술공사지부·공공연구노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지부가 각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본안소송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성과연봉제 시행을 담은 취업규칙 효력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사용자 불이익은 없고, 노조 피해는 커


재판부는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채무자(공공기관)로서는 적용시점을 일시적으로 늦추게 될 뿐 특별히 이로 인한 불이익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채권자(노조)들이 본안소송에서 패소한다면 취업규칙 개정은 이미 유효하므로 채무자로서는 기획재정부의 '성과연봉제 우수기관 인센티브 및 미이행기관 관리방안' 요구사항을 이행한 것이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채권자들이 본안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이는 기재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따른 취업규칙 개정은 무효로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변경임이 확인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기재부가 채무자에게 위 관리방안에 따라 불이익을 부여한다는 것은 부당한 조치로 이를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어느 경우에든 채무자는 기재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본안소송에서 노조가 승소해 성과연봉제 도입이 취소된다고 해서 성과연봉제 미시행을 이유로 기재부가 공공기관에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과 전주지법이 “성과연봉제 확대 시행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경우 정부 경영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는 등 금전적 불이익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과 정반대 결정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5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성과연봉제 우수기관 인센티브 및 미이행기관 관리방안을 의결했다. 관리방안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성과연봉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올해 인건비를 동결하고 기관평가에 반영해 경영평가 성과급을 감액하는 페널티를 주는 내용을 담았다. 기재부가 미도입기관에 페널티를 주겠다고 압박하면서 120개 공공기관 가운데 절반이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성과연봉제 중단해야 성실한 협의 가능


재판부는 성과연봉제 적용을 중단하면 노조의 단체교섭권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적용시점이 늦춰지는 동안 공공기관과 노조들은 취업규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성실히 협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노조에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며 “만약 가처분이 기각된다면 추후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완전히 전보되기(채워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우지연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법원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강행한 성과연봉제를 중단시켜야 노조의 헌법상 단체교섭권이 보장될 수 있다고 본 것”이라며 “기재부가 성과연봉제 확대도입 미이행시 불이익을 공언한 상황에서 법과 원칙을 우선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지하림 변호사(법무법인 중앙법률원)는 “앞서 가처분을 기각한 재판부에서도 성과연봉제 확대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임은 인정했지만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아 기각했는데 이번 재판부는 다르게 본 것”이라며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감안해 노조에 힘을 실어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향후 다른 노조의 가처분 판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여개 노조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과 전주지법은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국토정보공사노조가 청구한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침해됐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나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도 보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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