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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직원 '고객 폭언 감정노동' 첫 산재 인정고객에게 성희롱·폭언 당한 이마트 직원 적응장애로 산재 … 감정노동자 산재 신청 늘어날 듯
▲ 이마트 직원이 고객에게 폭언을 들은 피해사례를 증언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고객으로부터 성희롱과 폭언을 들은 뒤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공단이 대형마트에서 고객을 상대하며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산재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정은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 고객의 폭언·폭행으로 인한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추가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뒤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노동뉴스>는 23일 이마트 캐셔로 일하는 박아무개씨의 산재 신청에 대한 공단 동부지사의 판정서를 입수했다.

고객 폭언 들은 뒤 계산대만 서면 떨려

박씨는 지난 4월27일 계산대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숨이 가빠진다. 이날 오후 50대 남성인 김아무개씨는 구취제거용 사탕을 들고 박씨에게 끈적한 시선을 보냈다. 김씨는 “키스하기 전에 사탕을 먹으면 입냄새가 나냐”고 물었다. 박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먹어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씨는 “사탕은 증정품”이라고 주장하며 돈을 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눈알을 뽑아 버리겠다”며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10여분 동안 지속했다. 박씨는 사건을 겪은 후 불안감을 느끼고 불면증을 앓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병원은 “직장에서 고객에게 심한 언어폭력과 성희롱적 발언으로 인한 충격으로 적응장애, 신체형 자율신경 기능장애, 불면증을 앓고 있다”며 “요양진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박씨는 5월 공단 동부지사에 산재 신청을 했다.

지금도 박씨는 피의자와 비슷한 외모의 남성을 보면 불안해진다.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은 피의자에게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나 됐는데도 김씨의 폭언은 박씨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적응장애와 관련해 “과거 유사한 증상경력이 없고 스트레스 상황과 증상 간 인과관계가 있다”며 “고객과의 갈등에서 적응장애가 유발돼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자율신경 기능장애와 불면증은 업무연관성이 인정되지 않아 불승인됐다.

마트 노동자 산재 신청 인정 길 열려

박씨가 산재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올해 3월 노동부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부는 업무상질병에 관한 구체적 인정기준에 “고객으로부터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또는 이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추가했다.

이를 근거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는 만장일치로 "박씨의 적응장애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정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개정 시행령에 따라 감정노동으로 인한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산재로 인정받기 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이전에는 상당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적응장애 관련 산재 인정 건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가 올해 2월 노동센터에 의뢰해 대형마트 노동자 1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월 1회 이상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수찬 이마트노조 위원장은 “마트 노동자들이 고객 응대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청을 꺼려 왔다”며 “선례가 생긴 만큼 앞으로 고객응대 과정에서 생긴 정신적 피해로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마트 관계자는 박씨가 산재를 인정받은 것과 관련해 “고객이 폭언이나 폭력을 저지를 경우 사원들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고객이 폭언을 하면 점포 관리자가 나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이케어(e-care)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구태우  ktw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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