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조회 때 들었던 말은 '황산 몇 방울 떨어질 수 있으니 코팅장갑을 끼고 하라'는 말밖에 없었다. 보호복은커녕 우리가 받은 것이라곤 코팅장갑과 보안경, 일회용 마스크뿐이었다."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2공장에서 황산이 누출돼 6명이 중경상을 입은 가운데 사고가 난 배관 보수작업에 투입된 작업자들이 제대로 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인근 다른 맨홀에서 황산가스가 올라와 작업을 중단했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황산 잔류액·잔류가스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원청과 협력업체의 안전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얘기다.

플랜트건설노조와 울산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가 29일 오전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원청과 하청업체가 안전절차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원청에서 안전작업허가서가 내려오면 하청업체 관리자와 작업노동자들이 함께 서명을 하는데, 고려아연에서는 작업노동자들의 서명절차가 생략됐다. 사고가 난 맨홀 뚜껑에 "개방을 해도 된다"는 뜻의 파란색 'v'자 표시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노동자는 "사고 현장 인근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려고 할 때 가스가 올라와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하기도 했다"며 "작업 전에 잔류액·잔류가스 배출작업이 제대로 안 됐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하청업체도 작업자들의 안전에 소홀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조회 때 '황산 몇 방울이 떨어질 수 있으니 장갑을 끼고 하라'는 말 정도밖에 못 들었다"며 "황산 같은 강산성 유해물질 작업을 할 때 입어야 하는 보호복도 못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또 다른 노동자는 "언론보도를 보니까 고려아연 직원들이 사고자에게 물을 뿌리는 중화작업을 했다고 하던데, 사고자들을 챙긴 건 동료 작업자들이었다"며 "고려아연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한림이엔지'만 부르면서 질타하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고려아연에서 발생한 중대사고가 2012년 이후에만 10여건"이라며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과 위험작업 하청 떠넘기기, 솜방망이 처벌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는 이어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황산 누출사고와 관련해 "원청에도 산재발생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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