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청이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면 최고 7년의 징역형을 받거나 1억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노동계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나왔다. 미봉책에다 내용도 부실하다는 이유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비롯한 잇단 하청노동자 사망사건으로 활발하게 추진되는 20대 국회 입법논의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라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정부 개정안, 원청 책임 강화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지난 17일 밝혔다. 노동부는 개정안에서 원청이 안전보건시설 설치를 포함해 하청노동자 산재예방 조치와 관련한 작업 범위를 전면 확대했다. 지금까지 원청이 산재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 작업 범위는 토사 붕괴나 화재·폭발·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를 비롯해 20곳이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데, 법 개정 뒤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강화된다. 하청노동자가 숨지면 원청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유해·위험 작업 도급 인가 유효기간도 3년 이내로 제한한다. 그동안 한 번 인가를 받으면 계속 사업을 영위했으나 앞으로는 안전조치를 강화해 재인가를 받아야 한다.

노동부는 이와 별도로 원청의 산재예방 책임을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 하반기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제공해야 하는 안전보건정보를 ‘질식·붕괴 위험이 있는 작업’까지 확대하고 하나의 공사현장에 다수 시공사가 함께 작업할 경우 발주자가 안전보건조정자를 선임해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할 방침이다. 고의로 산재를 은폐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 조항도 신설한다.

박화진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최근 발생한 중대재해는 도급·용역 같은 외주화 추세와 함께 안전관리능력이 취약한 하청업체로 위험이 이전되는 현실을 보여 준다”며 “원청이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지고 산재예방을 강화하도록 법 개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 "위험업무 하청·재하청 금지 빠져"

정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노총은 "연이어 터진 사고로 위험 외주화나 생명안전 업무 외주화를 금지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과 연달아 발표되는 국회 입법 발의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라고 혹평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정부 개정안은 미봉책"이라며 "위험한 업무나 생명안전에 직결된 업무는 도급과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부는 유해·위험업무의 도급과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가 한국경총 반대로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제한적 범위에서 노동부 인가를 받아 도급을 하도록 한 '도급인가 확대법안' 을 냈지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노동부가 이번에 입법예고한 개정안 내용도 같다. 그런데 개정안에서 밝힌 도급인가 범위는 '도금·수은·납·카드뮴 등의 업무'로 제한돼 구의역 사고 같은 스크린도어 관리업무는 해당하지 않는다.

건설공사에서 발주처 책임을 강화한 내용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발주처에 안전보건조정자 선임을 의무화한 조항의 경우 전기·소방·정보통신공사 분리 발주로 제한하는 바람에 제철소나 발전소·화학공단에서 이뤄지는 다단계 하도급 공사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 위험 외주화와 관련한 법안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노동부의 늑장 입법예고와 노동 4법으로 인한 국회 파행 때문"이라며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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