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제가 관리자를 죽여 버리면 유성 사태가 끝나지 않을까요?"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 조합원 박아무개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 관리자를 죽이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4년 넘게 이어지는 회사의 노조탄압을 끝내기 위해 그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직장폐쇄 이후 생긴 불안·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박씨는 "관리자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아무개씨는 회사 식당에서 관리자들을 보면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가 나와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직장폐쇄 이후 하루에 두시간 이상 마음 편히 자지 못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김아무개씨는 술에 취하면 부엌칼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는 "울화가 치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데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혼란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 정신건강 악화=2011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직장폐쇄에 이은 복수노조 설립으로 노조파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던 유성기업. 4년이 지난 현재까지 노조탄압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이 직장폐쇄 사태를 겪었던 2011년 이후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충남노동인권센터 부설 노동자 심리치유 사업단 두리공감이 2012년부터 올해까지 아산·영동지회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을 실태조사한 결과다.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금속노조와 우원식·은수미·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유성기업 등 노조파괴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한 두리공감 활동가 장경희씨는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의 심리·정신건강 상태가 위기상태를 넘어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라며 "모든 지표가 최악이라서 올해는 분석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268명 중 43.3%가 우울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문제는 우울 고위험군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리공감에 따르면 우울 고위험군은 2012년 42.1%, 2013년 44.8%, 지난해 41.1%를 기록했다.

장씨는 "올해 실태조사에 응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만큼 올해 들어 고위험군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무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사회심리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64.5%로 조사됐다. 전년(41.6%)보다 22.9%포인트 증가했다. 회사의 압박이 장기화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조합원들은 53.6%로 지난해(41.2%)보다 12.4%포인트 늘었다. 사상 사건·사고 현장에 상시 출동하는 소방관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11.4%)보다 다섯 배 가까이 높다. 기업과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1.9%, 2%에 불과했다.

◇"노조탄압 중단 공동행동 모색하자"=장씨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조합원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큰 치료약"이라며 "유성기업 노조탄압 중단을 위한 공동행동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악화요인 분석을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유성기업 사업주와 관리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지자체·사회단체가 모여 조합원들의 치료를 지원하는 사회적 돌봄운동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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