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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11년, 여전한 인권침해] “허리 아파 입원 필요해요” 한마디에 쫓겨나 불법체류자 전락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에 아파도, 맞아도 말 못하는 이주노동자
▲ 구태우 기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17일 시행 11년을 맞았다. 고용허가제는 2003년 제정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따라 2004년 8월17일부터 시행됐다. 국내에 취업을 희망하는 15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해 최대 3년 동안 국내에서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율이 줄어든 만큼 성공적인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정착했다고 자평한다. 반면 시민·사회·인권단체는 고용허가제의 조속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 횟수를 최대 3회까지 제한한 탓에 이주노동자들이 사용자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허리 아파요”가 해고사유?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밀란(21)씨는 4개월째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그는 헬스기구 제조업체에 들어갔다. 입사 3개월쯤 됐을까. 밀란씨는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무거운 헬스기구를 이러저리 옮기는 단순 반복작업 과정에서 허리를 삐끗한 것이다. 결국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그는 “허리가 아파 일을 할 수 없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사용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장인 A씨는 “다른 사업장으로 가려고 (밀란씨가) 꼼수를 쓴다”며 “치료를 해 줄 수 없으니 네팔로 돌아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A씨는 “네팔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며 “네팔로 돌아가든지 알아서 치료를 받든지 결정하라”며 각서를 요구했다. 올해 4월 해고당한 밀란씨는 기숙사에서도 쫓겨났다.

시련은 계속됐다. A씨가 "사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했다"며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밀란씨를 신고한 것이다. 무단이탈 신고가 접수되면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그는 “사업장을 이탈한 게 아니라 회사에서 쫓아냈는데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며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까델(32)씨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지난해 8월 한국에 왔다. 까델씨는 대형 중량물 도장업무를 하다 허리 통증을 느꼈다. 통증을 참으면서 일하다 보니 허리디스크가 심해졌다. 4월 까델씨는 “허리를 치료받아야 한다”고 얘기한 뒤 해고당했다. 회사가 사업장 이동을 허가하지 않아 8월 현재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밀란씨와 까델씨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이주노조) 농성장에서 지낸다. 까델씨는 “체류기간 동안 사업장을 세 번 옮길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왔다”며 “사장님이 허가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을지는 생각도 못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11년 고통 끝내야"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과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주노동자 체류기간을 최대 3년, 사업장 이동 횟수를 최대 3년까지 제한하는 바람에 이주노동자가 사용자로부터 불합리한 대우와 인권침해를 당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도 “고용허가제로 인해 이주노동자가 착취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며 한국 정부에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단체는 이달 30일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이들 단체는 “지난 11년 동안 사용자들은 편의와 이익을 제공받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즉각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필요에 의해 입국한 노동자들"이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인처럼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태우  ktw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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