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0년을 맞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정당하게 일한 대가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외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한 미얀마 출신 킨 우 코우(34)씨는 이달 16일 고국으로 돌아간다. 당장 출국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달부터 법이 바뀌어 이주노동자가 퇴직금을 수령하려면 출국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13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가 시행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 개정안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을 대신하는 출국만기보험 지급시기를 출국 후 14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퇴직금을 공항이나 본국에서 받도록 한 것이다.

◇퇴직금 떼여도 하소연할 곳 없어=현재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은 사업주가 삼성화재컨소시엄에서 운영하는 출국만기보험금(삼성화재컨소시엄 지급)과 그 차액(사업주 지급)으로 구성돼 있다. 킨씨는 출국을 앞두고 사업주로부터 "그동안 매달 월급에 퇴직금과 식대를 포함해 지급해왔으니 보험금만 받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퇴직금 분할지급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킨씨와 동료들은 당장 사흘 뒤 출국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릴 시간조차 없다.

미얀마에서 온 킨 나이 우(30)씨는 출국일자가 넉 달 넘게 남았지만 지난달 22일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가 시행되면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사 한 달이 되도록 그는 퇴직금을 못 받고 있다. 그가 일한 건설업체 사장은 출국만기보험금 지급을 신청했다고 말했지만 킨씨가 확인해 보니 접수돼 있지 않았다. 그 사이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가 시행되면서 킨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는 "법이 바뀌기 전에 신청한 퇴직금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는데 퇴사하고 출국한 뒤에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업선택 자유도 막아=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됐지만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 침해가 악화되고 있다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날이 갈수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노동자의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되고 사용자가 가진 권한은 너무나 커 누가 봐도 불평등한 계약이 고용허가제라는 이름으로 존속하는 한 인권침해는 개선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가 불평등한 계약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3년간 최대 3번(1회 연장 4년10개월 체류자는 5번)까지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영세사업장 사업주들에게 인력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제도가 사업주의 횡포를 부추기고 이주노동자를 노동권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소모뚜 버마이주노동자공동체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이 가는 곳은 한국인 노동자가 기피하는 노동강도가 세고 노동환경이 열악한 곳"이라며 "특히 사업주의 횡포가 심한 경우 직장이동이 제한된 이주노동자들은 버티는 것 외에 그 어떠한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는 당사자인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이들을 착취하고 통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제도"라고 비판했다.

국제노동계도 "고용허가제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개정될 가능성은 낮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이 입법자의 재량 범위를 넘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6년째 대법원에서 잠자고 있는 이주노동자 단결권=한국 정부는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 역시 노동 3권이 보장된다고 밝히지만 노조 결성조차 쉽지 않다. 2005년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가 "미등록 노동자가 포함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합원 명부를 제출하라"는 서울고용노동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설립신고서가 반려된 후 지금까지 이주노조 합법성을 놓고 공방 중이다. 1심에서 이주노조는 패소했지만 2007년 2월 서울고법이 "불법체류 외국인이더라도 근로자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노동부가 상고한 후 6년이 지나도록 대법원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사업장 이탈 신고제도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제도로 꼽힌다. 고용허가제 업무편람에 따르면 5일간 이주노동자가 무단결근하거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사업주가 사업장 이탈신고를 하도록 돼 있다. 이탈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노동자는 본국으로 송환된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파업했는데 사업주가 '무단결근'으로 보고 이탈신고를 할 수도 있어 사실상 파업권을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미영 기자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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