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력이 탄탄한 대공장노조도 더 이상 복수노조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쟁의행위→직장폐쇄→제2노조 등장’이라는 석연찮은 패턴을 답습한 만도의 사례가 그렇다. 조합원 2천400명으로 금속노조 내에서 일곱 번째로 큰 만도지부가 회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에 이어진 신규노조의 등장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직장폐쇄 후유증 앓는 만도=완성차업체에 자동차 제어장치와 조향장치를 공급하는 국내 최대 부품사 (주)만도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지 1일로 닷새째에 접어들었다. 회사측은 지난달 27일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하루 파업을 벌이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경비용역을 투입시켰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30일에는 지부 내부의 갈등으로 집행부 전원이 사퇴했다. 같은날 기업별노조인 만도노조(위원장 공병옥)가 설립됐다.

만도노조의 제2노조 설립 사실은 만도의 모기업인 한라그룹 홍보팀 관계자가 지난달 31일 언론에 노조 출범선언문을 첨부해 발송하면서 알려졌다. 노조의 입장을 회사가 대변한 셈이다. 신규노조와 회사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노조활동에 회사측이 개입한 것이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만도의 사례는 지난해 7월 복수노조가 시행된 뒤 노사갈등 사업장에서 발생한 복수노조 유형을 답습하고 있다. KEC·유성기업·한진중공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업장에서는 예외 없이 ‘노사갈등→쟁의행위→직장폐쇄→용역투입→친사용자 노조 등장’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기존 노조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대공장노조 무력화, 시간문제=의아한 점은 만도의 경우 평소 노사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만도에 갑자기 신규노조가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신규노조의 공병옥 위원장은 금속노조 만도지부 5기 지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민주노총의 주요 정파그룹 회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새 노조를 출범시키며 내건 기치는 △고용안정 △정치투쟁·산별운동 결별 △지역에 봉사하는 신노동문화 확립 등이다. 이 중 주목할 대목은 고용안정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만도 노사는 문막·평택·익산 3개 공장별로 고용안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각 공장 대표와 공장별 지회장이 해당 공장의 인력운영 규모 등을 논의한다. 최근 자동차업계의 호황으로 생산물량이 증가하자, 넘치는 물량을 아웃소싱으로 전환하는 것이 주요 논의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기존 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전제로 회사의 외주화 방안을 뒷받침한 것이다. 외주인력을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은 셈이다.

이런 가운데 3개 공장을 총괄하는 만도지부가 외주화 반대와 충원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지부와 지회 간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지부-지회 집행부가 모두 사퇴했고, 집행력 공백이 발생한 틈을 타 신규노조가 등장했다. '현장의 실익'을 강조하는 신규노조가 회사의 외주화 방침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만도의 사례는 경영과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대공장에서도 직장폐쇄와 신규노조를 통한 노조 무력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대공장노조들이 현재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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