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복수노조 제도가 고용노동부의 경직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운영으로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기업별교섭만 인정하는 창구단일화 제도가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에 독이 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23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이달 2일 일괄 조정신청을 접수한 121개 사업장 가운데 7개 사업장에 대해 "조정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결정이 내려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등 7개 사업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노동쟁의라고 확인할 수 없어 조정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지 않았으므로 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충북지방노동위원회도 각각 공공운수노조의 지역교섭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비정규직지회의 원·하청 교섭 등 초기업단위 교섭에 대해 "사업장별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행정지도를 내렸다.

산별교섭 참가 사업장, 창구단일화 악용

문제는 사용자들이 이 같은 창구단일화 제도의 맹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회사인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충북지노위는 이 회사 쟁의조정 사건에서 “교섭대표노조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회사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며 사측에 창구단일화 절차 이행을 권고했다.

그런데 회사는 충북지노위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지회 간부들을 징계해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회가 이달 13일과 20일 금속노조 산별파업에 참가하자 회사가 “노동위의 행정지도 결정에도 파업에 돌입한 것은 불법”이라며 박윤종 지회장 등 지회간부 3명을 징계위에 회부한 것이다. 지회 관계자는 “사실 명백한 단일노조여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데도 노동위가 무리하게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고, 이번 사태의 귀책사유가 있는 회사는 노조무력화를 위해 노동위 결정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이 인정한 교섭권, 도로 물거품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2005년 금속노조에 가입해 2007년까지 꼬박 2년을 회사와 단체교섭을 위한 법정소송에 쏟아부었다. 기아차 모닝 등을 생산하는 동희오토 5개 하청업체 소속인 이들은 사용자측이 노조법상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근거로 기업별노조가 있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해 긴 시간을 소송에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법원이 “노조법상 2009년까지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기업별 단위노동조합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산별노조 소속인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의 손을 들어주면서 마침내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조합원이 8명에 불과한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교섭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일회성 처방 아닌 근본대책 필요”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한 산별교섭 부작용이 잇따르자 최근 노동위는 일부 업종의 경우 교섭단위를 분리해 초기업별 교섭을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에 따라 건설플랜트와 청소용역 사업장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위는 지난해 21건의 교섭단위 분리신청 사건 가운데 단 1건만 인정했는데 올해의 경우 5월 현재 172건 가운데 50건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인정했다. 50건 모두 지역별교섭을 하는 건설플랜트 사업장이었다. 중노위 관계자는 “교섭관행상 창구단일화 제도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건설플랜트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서울지노위가 지난달 6월 서울도시철도 6호선 청소용역업체의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한 것과 같은 이유다.

이에 대해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부가 최근 노조법에 대한 경직된 행정방침을 일부 수정하고 있다”면서도 “일회성 처방으로는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에 노조법 재개정 같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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