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비정규 배송기사의 죽음을 두고 택배업계 노조들은 “예견된 죽음”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실적평가로 정규직 전환 여부를 가르는 쿠팡 인사제도와 정해진 시간 안에 배송을 완료하도록 하는 운영시스템을 죽음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는 16일 입장문을 내고 “쿠팡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야기한 무한경쟁과 쿠팡맨을 착취하는 노무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된 김아무개(46) 쿠팡 비정규 배송기사는 오후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했다. 배송구역을 두 바퀴 돌며 정해진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 김씨 죽음 뒤 과도한 업무량 문제가 지적되자 쿠팡측은 “입사 후 트레이닝 기간이어서 정규직 쿠팡맨의 50% 정도 물량을 소화했다”고 해명했다.

지부 관계자는 “말장난에 불과한 해명”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 주문이 많은 연초인 데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며 택배물량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50%라고 해도 적지 않은 규모라는 것이다. 지부 관계자는 “업무량이 적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쿠팡은 김씨가 실제 배송한 물건수와 가구수를 공개하라”며 “낯선 업무를 시작한 김씨는 많은 물량을 정해진 시간까지 배송해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부는 18일 쿠팡 배송기사가 참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 실태를 증언한다. 늘어난 물량을 배정하는 방식의 문제, 야간근무 위험성 등을 지적한다.

전국택배연대노조도 성명을 내고 “엄청난 물량 증가로 힘들어하는 택배노동자는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건강은 지금도 위협받고 있다”며 “자신이 죽어 가는지조차 모른 채 뛰어다니고 힘든 계단을 올라갔던 고인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애도했다.

한편 김씨는 지난달 14일 1년 계약을 하고 쿠팡 배송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12일 오전 배송을 하던 경기도 안산 한 건물빌라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새벽배송을 담당한 그는 생전 가족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려워 너무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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