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던 경기도 성남시 콜센터의 한 상담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와 가해자·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성남시 콜센터 직장내 괴롭힘 사망사건 대책위는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성남시장의 사과와 시의 조치를 기다렸지만 진상조사 대신 오히려 사건 은폐 정황이 나타났고 또 다른 직원이 가해를 당하는 등 문제가 오히려 심해졌다”고 밝혔다. 이날 출범한 대책위는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노동당·민중당·정의당 성남시위원회, 최재철 성남동성당 주임신부를 비롯한 지역 단체·인사들로 구성됐다.

고인 비망록엔 “책상도 없이 의자에만 앉혔다”

성남시청 콜센터에서 일하던 고 강아무개씨는 지난해 12월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남시 공무직 징계위원회 해고 결정에 대해 고인이 신청한 재심이 열린 지 사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성남시청은 고인이 지난해 6월 콜센터 사무실에서 상급자와 시비가 붙은 것과 관련해 강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고인이 남긴 비망록에는 근무 당시 수차례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던 상황을 비롯해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던 정황이 기록돼 있었다. 2018년 5월 성남시청 콜센터 상담원으로 용역업체에 입사한 고인은 같은해 9월 성남시청 공무직으로 직접고용됐다.

대책위는 고인이 지난해 1월부터 직장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한 관리자는 지난해 1월 강씨에게 타자속도가 언제 향상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퇴근 뒤 집에서 작성해 올 것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관리자는 업무 실수에 대해 수차례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고, 제출한 보고서가 잘못 작성됐다며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다. 고인은 질책을 받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돼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고인은 컴퓨터가 없는 책상에서 매뉴얼을 숙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벽을 보고 혼자 앉아 공부하거나, 콜센터 상담원 알림 공지를 위한 메신저에 고인만 배제되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고인의 비망록에는 “책상도 없이 의자에만 몇 시간씩 앉혀 놓았다”며 “내가 눈감고 암기하면 여러 상담사들이 나 잠잔다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 대책위 관계자는 “고인은 벽을 보고 오래 앉아 있으면서 다리가 아파서 자세를 바꾸면 ‘벌을 받는 사람의 자세가 그게 뭐냐’고 질책을 받았다”며 “‘돈 있을 텐데 일 그만두지 왜 괜히 입사해 관리자를 괴롭히고 있냐’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도 들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대책위 “성남시 고인 숨진 사실 은폐하려 했다”

유가족들은 고인이 숨진 뒤 성남시에 진상조사와 가해자·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시청은 고인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콜센터 직원들에게 고인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12월31일 발인을 할 때 유가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민원실로 가서 성남시장 비서실에 전화를 해 진상조사를 요구했는데, 이때도 성남시는 콜센터 직원을 사무실에서 이동하지 못하게 했다”며 “사건을 은폐한 정황”이라고 말했다.

콜센터 내부에서 고인이 숨진 뒤 또 다른 직원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책위는 “고인이 숨진 뒤 직원 한 명이 직장내 괴롭힘을 우려하며 민주노총에 가입했는데 다른 직원들이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거나 그 사람을 공지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당사자가 고인이 되셨는데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를 말하기 어렵다”며 “직장내 괴롭힘 논란에 대해서는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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