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서지윤 간호사 1주기 추모제가 2일 정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본관 로비에서 열렸다. 고인의 어머니와 동생·언니 등 유가족이 함께했다. 동료들은 "서 간호사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병원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제정남 기자

“나 일 끝나고 가는데 머리 찢어진 사람이 길에 앉아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서 봐주고 가고 있어.”
“누가?”
“모르는 사람이지.”
“남자가?”
“응ㅜ 나무에 부딪쳤대. 술을 많이 마셨대.”
“술 취한 사람 무서운데.”
“근데 피가 나서 신고해서 응급차 와서 봐주고 왔어.”
“착한 일은 했구먼. 위험해. 항상 조심하고.”

2018년 3월3일 새벽 12시47분부터 50분 사이에 엄마와 딸은 문자를 주고받았다. 딸은 친언니와 함께 생활하며 엄마와 떨어져 지냈다. 딸이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한 병원에서 1년간 근무하고 옮긴 병원이 서울의료원이었다. 고 서지윤 간호사.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는 진상조사 보고서에 “밝은 성격을 지녔으며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좋다. 동료들은 환자를 배려하고 존중했다고 평가했다”고 썼다.

서 간호사 동료들 1주기 맞아 추모제 열어

2일 정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본관 로비에서 고 서지윤 간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언제 어디서나 간호사로서의 책임,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던 향기 나는 사람이었더라”며 고인을 기렸다. 명숙 활동가는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가족에게도 “환자가 아픈데 잘 낫지 않아서 걱정된다”는 식으로 자신이 돌보는 환자 얘기를 자주했다.

서 간호사는 2013년 서울의료원에 입사해 병동에서 일하다 2018년 12월18일 간호행정부서로 옮겼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20여일 만인 지난해 1월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문도 우리 병원 사람은 안 왔으면 좋겠어”라는 유서를 남겼다. 사망당시 나이는 29세. 무엇이 고인을 벼랑으로 몰아붙였을까. 그는 숨지기 전인 2018년 12월29일 어머니 최영자씨에게 “나 이제 간호사 태움이 뭔지 알 것 같아”라고 말했다.

고인이 숨진 지 한 달 열흘이 지난 지난해 2월16일 간호사의 잇단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최씨는 “힘들다고 토로할 때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며 “안타까운 죽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진실을 제대로 밝혀 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라고 말했다.

고인의 친동생 서희철씨는 이날 추모제에서 “처음 누나 모습을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아 허망해하다가, 이내 누나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숨진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는 서울의료원을 보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며 “진상규명과 사과를 받아 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지난 1년 서로를 다독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남은 가족 투쟁 끝에 ‘직장내 괴롭힘에 의한 죽음’ 진상 밝혀
추모비 건립·관리책임자 징계 약속 이행 안 돼


서울시는 유가족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3월12일 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진상대책위는 같은해 9월6일 “고인은 직장내 괴롭힘에 의해 숨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족에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과, 서울의료원 인적쇄신·조직개편, 직장내 괴롭힘 서울시 조례 제정,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 괴롭힘 실태조사 등 34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박원순 시장은 ‘권고안 3개월 이내 실행’과 ‘서 간호사 추모비 건립’을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은 지난해 12월2일 사임했지만 진상대책위가 서 간호사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규명한 이들에 대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력충원을 포함한 조직개편도 더디다. 서울의료원은 박 시장이 제안했던 추모비를 건립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어머니 최씨는 “추모비는 딸의 죽음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 병원에서 같은 죽임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상징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시와 의료원이 약속을 지켜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노동자와 환자가 존중받는 병원을 위해 후속대책을 완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원 노동자 50여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추모제 선언문에서 “서 간호사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환자를 살리고 노동자가 행복한 의료원·일터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고인이 편히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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