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 1여년 만에 노동시간단축 제도가 누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3당 간사 의원에게 특별연장근로(인가연장근로)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존 자연재해 등에 한정했던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에 신상품 연구개발과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합의 준수를 원칙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도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방안(현행 3개월→6개월)을 주 52시간 상한제 보완입법으로 준비했던 정부가 재계를 달래느라 사회적 합의마저 흔들고 있는 격이다. 보수야당은 특별연장근로 확대에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등 쟁점법안과 패키지 처리를 전제한다면 보수야당 요구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보완입법 안 되면 시행규칙으로 특별연장근로 확대
이재갑 장관 “탄력근로제 외 다른 입법 하지 않겠다 한 적 없어”


14일 국회 환노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주 52시간 상한제 보완입법으로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국회에서 (주 52시간 상한제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의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예측하지 못한 업무량 증가 등에 대한 제도개선 요구가 있어 특별연장근로 개선 필요성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최근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를 환노위에 제안했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9조2항)에 따르면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준하는 사고에 한해 노동부 장관 인가로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노동부는 이 같은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에 △신상품 연구개발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으로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막대한 사회적 손해가 초래하거나 재산상 피해가 있을 경우 △시설·장비의 갑작스런 장애 및 고장으로 대책이 필요한 경우를 추가로 담았다. 다만 노동자 건강권 보호조치로 연장근로 한도를 4주 기준 1주 평균 6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검토안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입법화하지 않으면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안을 가지고 있느냐”며 “정부가 야당이 요구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에 동의했다는 보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갑 장관은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에) 정부가 동의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이 “그간 정부는 경사노위 합의안 외에 추가적인 입법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 장관은 “탄력근로제 확대 외에 다른 입법을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선택근로제·특별연장근로 받고 노조법 개정?
보수야당 ILO 기본협약 비준 동의 안 할 듯


환노위 여야 3당 간사는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주 52시간 상한제 보완입법을 논의했으나 입장차만 확인했다. 노동관계법 논의를 위한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 일정도 잡지 못했다. 여당 간사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노사가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외에 선택근로제 정산기간과 특별연장근로 확대를 요구했다”며 “노사가 합의한 내용에 유연근로제를 2개 더 추가하는 것은 받기 어렵고 다만 환노위에 계류돼 있는 수많은 쟁점법안을 일괄해서 타결한다면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를 같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는 경사노위 합의니까 존중한다”면서도 “선택근로제는 IT·디지털산업에, 특별연장근로는 조선업이나 자동차산업 관련 협력업체에 필요한 사항인데 더불어민주당이 선택근로제건 특별연장근로건 하나만 받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환노위 야당 관계자는 “여당의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등과의 패키지 처리 제안은 야당이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것은 결국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 임이자 의원은 한정애 의원의 패키지 처리 제안에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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