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방식의 갑작스런 해촉은 김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보험설계사노조(위원장 오세중)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는 보험회사나 법인보험대리점의 일방적 수수료 규정 변경과 부당해촉, 관리자 갑질 등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려 한 이유다. 사무금융연맹·보험설계사노조·장그래노조·특수고용 노동자 대책회의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설계사노조 설립신고서 제출을 알렸다. 이들은 "보험설계사들이 보험회사의 부당행위에 스스로 힘을 모아 대응하기 위해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회사 마음에 안 들면 해촉"
자신을 21년차 보험설계사라고 소개한 박아무개(46) 매니저는 "법인보험대리점 ㅁ사의 경우 10여년 전만 해도 일을 하다 그만두더라도 계약이 유지되는 보험에 대해선 1~2년치 수수료를 지급했다"며 "하지만 현재는 수당을 절반으로 삭감한다든지, 주지 않는 방식으로 수수료 체계가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매년 회사는 보험설계사에게 기존보다 악화된 새로운 수수료 규정에 서명하라고 하는데 동의를 거부하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다"며 "서명을 거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보험설계사 박인포(54)씨도 법인보험대리점 ㅅ사의 부당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해촉을 당한 경험이 있다. 박씨는 "보험설계사들이 매월 받는 수수료의 5%를 회사가 적립했는데 해당 적립금을 돌려주지도 않고 줬다고 하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을 강요했다"며 "서명을 거부하자 50여명의 동료가 보는 앞에서 심한 욕설을 하고 그날 바로 해촉을 통보했다"고 증언했다. 김소영씨는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어도 특수고용직이라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며 "(아무도 감독하지 않으니) 법인 대표도 무서워하지 않고 이렇게 횡포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는 노조법상 노동자"
보험설계사노조는 "보험설계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로 노동부는 노조 설립신고증을 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보험설계사가 보험회사·법인보험대리점에서 출근 등 근태 관리·감독을 받고, 주 1~2회 교육에 참여한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사측이 업무 위탁계약을 맺을 때 대개 보험설계사에 대한 관리규정을 명시하고 해촉할 수 있는 사유를 포함한다고 했다.
오세중 위원장은 "회사는 보험설계사가 교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왜 안 나오냐고 독촉하고 불이익을 준다"며 "회사 마음대로 보험설계사 관리규정을 정하고 규정에 따라 보험설계사를 해촉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노조법상 노동자가 맞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설립신고증이 잇따라 교부되고 있다"며 "이번에는 전향적인 결과를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보험설계사로 구성된 전국보험모집인노조는 2000년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당시 정부는 "보험설계사는 근로자가 아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례로 노조법상 근로자 범위가 확장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퀵서비스 기사·택배 기사 등 특수고용직 노조에 설립신고증을 잇따라 내주고 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노조를 설립하는데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을 하고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헌법과 노조법에서는 엄연히 노조설립 신고주의라고 적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노동부는 즉시 보험설계사노조 설립신고증을 발부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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