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31일 입법예고하는 관련법 개정안은 실업자·해고자의 노조가입과 활동 허용을 뼈대로 한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문제 삼고 있는 EU의 지적 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다. 입법예고안 토대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 의견과 차이 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근로자 아닌 자가 가입하면 노조 아니다” 존치

실업자나 해고자의 노조가입과 관련해 ILO와 EU가 공통으로 지적한 국내법 조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4호라목이다. 2조4호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할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이 중 라목에 명시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대해 국제사회는 개선을 요구해 왔다. 경사노위 노동시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 역시 “2조4호라목 개정”을 안으로 냈다.

노동부는 그러나 31일 입법예고하는 노조법 개정안에서 2조4호라목을 유지했다. 대신 라목 단서조항인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김민석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순수 자영업자가 노조를 만드는 것은 제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라목을 존치했다”며 “근로자 정의를 좁게 해석하는 단서조항만 삭제하더라도 실업자나 해고자가 노조에 가입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설립신고제 취지에 맞게 운영할 것”

ILO나 EU는 우리나라 노조설립신고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또는 특수고용직 노조 사례를 봤을 때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노조설립신고제도가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한다는 본래 취지를 구현하면서 운용될 수 있도록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조법 개정안에서 설립신고제를 그대로 뒀다. 박화진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공익위원안도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게 아니라 취지에 맞게 운영하라는 것”이라며 “전교조 사례처럼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과 임원선출을 확인해 보완을 요구하거나 반려하는 기능은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노조 아님 통보 제도를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9조(설립신고서의 보완요구 등) 2항 삭제도 주문했다. 시행령 개정은 정부 권한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확답을 못하고 있다. 박화진 실장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법 개정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입법 추진 경과를 보면서 마무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청노동자 원청에서 노조활동 가능할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의 단결권 관련 권고안을 바탕으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실업자와 해고자가 노조활동을 할 때 목적·시기·장소·인원을 사용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초기업노조 간부나 하청노동자 노조활동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부는 노조법 개정안에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한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초기업노조를 중심으로 노조간부의 사업장 출입 관련 단체협약이 상당수 마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정착돼 있는 관행과 단협 내용을 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노조법 개정안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관계 당사자 간 단체교섭 촉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현행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가 기업별 노사관계 중심으로 설계돼 초기업별 교섭을 제약하고 있다는 공익위원 지적에서 나온 조항이다. 물론 강제성이 없는 선언적인 조항이다.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산별교섭이나 사용자단체 구성을 강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오히려 ILO 협약 취지에 맞지 않다”며 “조금이라도 관행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교섭방식과 단체교섭 촉진에 관한)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