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 주최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 개막식에서 노사정 관계자를 비롯한 각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분쟁 절차에 돌입한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큰 국제사회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주최한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에서 “한·EU FTA 위반시 경제적 제재가 없다는 경영계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과거 미얀마가 ILO 조사위원회 권고를 수용하지 않아 ILO 총회 제재를 받았다”며 “ILO가 경제적 제재를 하지 않았는데도 미얀마는 곧바로 손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ILO는 회원국들과 유네스코·세계무역기구(WTO) 같은 유엔 전문기구에 "미얀마와의 협력을 중단하고 정기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제재를 가했다. 이 교수는 “제재 시스템을 주도한 게 EU”라며 “한·EU FTA 위반시 유사한 제재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EU의 집요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2017년 5월 유럽의회에서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며 “그때 EU 집행위원회에 촉구한 바와 같은 단계로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회는 결의안에서 전문가패널 소집까지 EU 집행위에 촉구했는데, 현재 그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계속 미비준 상태에 있다면 EU 집행위가 전문가패널을 소집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며 “5월23~26일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뒤 착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또 있다. 이 교수는 “전문가패널이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한국의 FTA 위반을 인정할 경우 전 세계 최초로 FTA 노동조항 위반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며 “EU 제재 수위도 예단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EU는 한·EU FTA 노동조항을 '비구속'에서 '강제'로 바꾸는 내용의 용역을 한국 시민단체에 맡겨 이미 안을 만든 상태”라며 “전문가까지 동원해 준비한 만큼 전문가패널이 시작되면 지속적으로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FTA로의 확장 가능성이다. 이 교수는 “FTA 노동조항 위반이 인정되면 무역제재를 명시하고 있는 한·미 FTA와 한·캐나다 FTA 운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는 노동기준 위반건이 워낙 많아 한번 전문가패널로 넘어가는 문을 열면 수없이 많은 제소가 뒤를 이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애초에 문을 안 열도록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게 중요하다”며 “경영계도 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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