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O 긴급공동행동과 국회 노동포럼 헌법33조위원회 주최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LO 결사의자유 협약 비준 관련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습니다. 98년 ILO 고위급 노사정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2006년과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출마하면서도, 2017년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을 만나서도 한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하고 또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OECD 가입 당시부터 현재까지 23년간 줄기차게 약속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어느 정부보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의지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였기에 실망도 큰 듯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한국 정부가 수차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하고도 비준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향한 “직무유기·반헌법적 행태” 비판

ILO 긴급공동행동과 국회 노동포럼 헌법33조위원회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ILO 100년과 한국, 결사의자유 협약 비준이 시급하다’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인수 원장은 “헌법 73조에 따라 조약의 체결·비준권자는 대통령”이라며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려면 우선 정부가 비준안과 관련 입법안을 마련해 법제처 심의,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회 동의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협약 비준 주체인 정부가 사회적 합의와 국회 논의를 앞세운 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고용노동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방패 뒤에 숨어 노사 간 합의가 있어야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헌법에서 정한 협약 비준 주체는 경사노위도, 한국노총도, 경총도 아닌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국민 기본권 보호를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3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그 자체로 반헌법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인권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는 노동부 장관을 겨냥해 “권고 이행 노력을 명시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행위”라며 “형법상 직무유기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비준안 제출하고 국회 압박해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재갑 노동부 장관과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연이어 만나 “여름 전 ILO 핵심협약 비준 완료 가능성”을 묻고 한국 정부에 “조속한 행동”을 촉구했다.

EU가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회부까지 언급하며 압박수위를 높이는 반면 한국 정부는 여전히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고수한 채 사회적 대화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회 헌법33조위원회 대표위원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선 비준"을 촉구했다. 심 의원은 “EU가 공개적으로 무역분쟁 절차 돌입을 언급하며 압박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과 한계를 국제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다른 방법이 없다. 정부는 (먼저)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해 국회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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