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고용노동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후속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정부는 실태조사와 전문가위원회의 충분한 검토만 되뇌고 있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노동 3권 보장이 선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처럼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부터 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설립신고 반려 이유 되풀이=21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해 하반기 시작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무제공 실태조사를 1년 넘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 노동부 장관에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호를 위해 별도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이들을 포함하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3개월 뒤 인권위에 “실태조사와 노사 및 전문가 간의 논의를 통해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적 보호방안을 마련·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같은해 10월 실태조사가 시작됐지만 1년이 지나도록 조사가 진행 중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종류가 다양하고 노무제공 실태가 워낙 복잡해 조사가 오래 걸린다”며 “언제 조사가 마무리될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이던 지난해 2월 인터넷 방송 <주간 문재인 6호>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이상한 사장님’이라고 칭하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의무가입뿐만 아니라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된 뒤 지난해 10월 발표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는 "2018년 하반기에 사내하도급 노동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약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올해 초 건설노조의 대표자 명의변경 신청(노조 설립사항 변경신고서)에 수정·보완을 요구했다. 조합원 중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기계 노동자가 섞여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앞서 비슷한 이유로 대리운전노조의 조직변경 신고를 반려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특수고용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로 노조 대표자 명의변경 신청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현 정부 들어서도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며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공약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심사 제로' 노조법 개정 손놓은 국회=노동부는 전문가 검토를 거쳐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1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을 포함해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출범 10개월이 다되도록 구체적인 활동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부여하는 것은 국정과제이기도 해 현재 노동계 요구안을 놓고 전문가위가 세부 내용을 검토·수립하는 중”이라며 “발표 시점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위가 안을 내놓으면 사회적 대화를 거쳐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특수고용 노동자는 250만명 규모로 추산된다. 이들을 명확히 정의하고 있는 법률상 규정은 없다. 일반적으로 외견상 고용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은 개인사업자지만 업체에 종속돼 직·간접적인 업무지시와 감독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플랫폼 노동 활성화에 따라 종류와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경마기수로 일하는 노동자 30여명이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것에서 보듯 다양한 직종 노동자들이 노조를 찾고 있다. 노동부가 하루빨리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는 노동기본권 보장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높은 이유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인권위 권고의 핵심은 노동 3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노동부는 취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업무종속성 등을 따지며 실태조사를 하고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 경우 특수고용직 안에서도 업종별로 구분해 노동기본권 부여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상임활동가는 “노동부가 시간을 끌며 자꾸 업종별 세부 기준을 세우려는 것이 문제”라며 “기업이 기준을 조정해 사용자 의무를 피해 가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부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설립을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해 “고용형태 다양화를 고려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냈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2016년 9월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을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몇몇 의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논의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환노위 관계자는 “여야 간사가 합의해야 안건이 상정되는데, 지금까지 노조법 2조 개정 문제가 고용노동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 안건으로 잡힌 적은 없다”고 전했다.

◇특수고용 노동자 결의대회 열어=노동자들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자 6천여명이 참석했다. ILO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조)에서 군인·경찰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를 비준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통가 등 6개국뿐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ILO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수십년간 요구하고 이는 대통령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노동부는 그들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라고 협박하고 있다”며 “정부에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즉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21일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분명한 요구를 걸고 총파업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대리업체 사장이 운전기사를 불러 폭행하고 부당하게 해고하고, 한 콜이라도 더 받겠다고 바쁘게 뛰다가 한 주 걸러 한 명이 사망해도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과 보호를 못 받고 있다”며 “정부가 우리의 유일한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대회 후 청와대로 행진했다. 퀵서비스 오토바이 30대, 레미콘 1대, 택배용 차량 2대가 행렬을 이끌었다. 참가자들은 “국제사회 망신이다. ILO 협약 비준하라”고 외쳤다. 민주노총은 이날 청와대에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대표단을 꾸려 청와대 앞 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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