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을 축소했다. 업무를 핵심과 비핵심으로 나누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했다. 위험도 아웃소싱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안전장치 없는 위험업무에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외주화된 상시·지속업무의 직접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외주화된 고용형태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노동자들이 현실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정해진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수하물지회장

지난해 12월 함께 일했던 동료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동료의 폐암을 산업재해로 신청한 의사 진단서에는 “17년간 주야간 3조2교대 근무를 했으며, 설비해체 작업시 노출기준을 초과하는 고농도 기타 분진에 노출돼 왔으며, 중금속 노출은 저농도이나 발암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동료의 산재신청을 바라보며 같은 일을 하는 6개 업체 480여명 노동자의 일터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처리시설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생각을 한마디로 줄이라면 “우리는 수하물보다 못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수하물 처리시설은 본래 무인시스템으로 설계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시운전 단계부터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자 사고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상주 직원을 투입하고 있다.

지하에 위치한 현장에는 환기시설을 비롯해 냉·난방시설, 안전시설, 휴게시설 등이 갖춰져 있지 않다. 특히 환기시설 미비로 인한 분진 피해가 심각하다. 개항 후 17년이 지난 공항의 수하물 설비들은 모두 노후화됐다. 각종 분진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를 배출할 수 있는 배기시설이 없다. 현장 바닥과 설비 위에는 분진이 카펫처럼 두껍게 쌓여 있다. 설비들이 밀집해 있어 작업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

설비 대부분이 중량물이지만 계단이 많아 인력으로 운반해야 한다. 장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의 힘으로 작업한다. 전기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곳에서 작업을 하라는 지시가 아무렇지 않게 내려온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두 다리에 의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위험천만한 작업을 할 때 안전장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도 업체는 묵묵부답일 뿐이다.

올해 3월에는 인천공항공사 공문에 따라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노동자들이 피부질환을 호소하면서 작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봄맞이 대청소는 노동자들의 안전·생명과 관계없이 강제로 진행되고 있다. 업체들은 분진이 어떤 성분인지 조사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형 청소기 몇 대와 빗자루·먼지떨이로 먼지를 쓸어내리라고 한다. 날리는 먼지를 노동자가 흡입하는 상황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환경정비 실적을 내서 인천공항공사에 제출할 뿐이다.

열악한 제조현장을 "사람을 갈아서 물건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인천공항공사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화물 처리시스템은 노동자의 몸과 생명을 갈아 넣어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인천공항공사와 1차 하청업체인 포스코ICT, 그 아래 6개의 2차 하청업체들은 하청의 하청을 통해 노동자 건강과 안전 책임을 외주화했다. 노동자들을 하나의 도구쯤으로 대한다. 위험한 일이 외주화되고, 그 노동은 지하에 갇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노동을 드러내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달 5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인천공항공사와 수화물 관리업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공사는 기자회견 직후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현장은 문제 없이 관리돼 왔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며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현장 고압전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공기 중에 노출된 유리섬유 등 위험요소에 대해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도자료를 낸 그날 저녁 고압전선에 주의표시를 부착하고, 유리섬유를 감추는 보강작업을 하는 등 현장을 은폐하고 법 위반 사실을 숨기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투명인간이 된 우리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크고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안전한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보장받는 권리가 돼야 한다. 지금처럼 하청업체 직원의 피와 땀을 쥐어짜서 얻어 내는 1등이 아닌 직원들이 인정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진짜 1등 공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