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을 축소했다. 업무를 핵심과 비핵심으로 나누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했다. 위험도 아웃소싱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안전장치 없는 위험업무에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외주화된 상시·지속업무의 직접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외주화된 고용형태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노동자들이 현실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이 유니폼이 좋은 점이 뭔지 알아요?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우리 회사 이름도 에인절(천사).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 나오는 대사다. 우리에게 ‘청소노동자’들이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됐을까. 영화처럼 투명인간은 건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노동자들 또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 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화려함 뒤에는 야간작업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거리를 깨끗하게 하도록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있었다. 지난 30년간 길들여진 노동자들은 아침에 청소하자는 이야기에 “해가 뜨는 시간에 청소업무를 하면 일반 차량이나 시민들과 엉켜서 일이 더뎌 불편하다”거나 “시민들이 청소업무를 더럽게 여겨 민원을 넣을 것”이라고 손사래부터 친다(최근 주간작업으로 변경된 몇몇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이제야 시행하느냐며 환영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 적은 인원으로 빨리빨리 일해야 하는 환경 때문은 아닐까. 깨끗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전문직 노동만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11월 연이은 광주 환경미화원 사망사고에 대해 대통령은 편지를 보냈고, 범정부 차원의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한 해 평균 590여건의 안전사고를 2022년까지 90% 줄이겠다는 너무도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차량을 개조하고, 작업시간을 주간으로 변경하고, 안전장비 착용과 교육을 강화한다고 일반노동자의 산재사망 만인율(약 0.5명)보다 세 배나 높은 사망사고(2015~2017년 15명 사망)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정부 목표처럼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 원인인 인력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하고, 재계약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눈치를 보는 하청회사 사장,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를 중간에서 착취해 물의를 일으키는 하청회사를 없애는 것이 먼저다.

전국 환경미화원은 3만4천여명이다. 지자체가 직접고용한 노동자가 1만9천여명, 외주위탁업체 노동자가 1만5천명 정도다.

공공운수노조에는 지자체 직접고용 환경미화원과 위탁업체에 고용된 환경미화원 모두 있다. 직접고용과 위탁업체 사업장에 각각 나가 교육하면서 본 현장은 너무도 달랐다. 휴게시설 넓이와 냉난방, 샤워시설 유무, 보호구 질과 지급주기 차이, 청소차량·근무인원·출근시간·임금 무엇 하나도 위탁업체가 좋은 것은 없었다.

심지어 일하다 다쳤을 때 신청할 수 있는 산재보험 정보도 달랐다. 회사가 인정해야만 산재가 된다거나, 다친 지 3개월이 지나면 산재신청을 할 수 없다거나, 산재로 휴업하려면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 놓고 치료를 받으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휴게시설 하나, 샤워시설 하나도 늘리지 못하는 인력파견업체가 아니라 산재를 은폐해야만 재계약이 가능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지자체 직접고용이 정답이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일반원칙을 밝혔다. 청소노동자는 행정기관에서 민간위탁된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3단계에 해당된다.

정부 일정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전환기준을 만들어 전환을 추진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개선대책에는 고용형태별로 차별 없는 근무여건을 조성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정규직 전환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야간작업이 아닌 낮에 일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문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환경부와 고용노동부·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에 경찰청까지 협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근본을 비껴간 대책을 보며 환경미화원에게 계속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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