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일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천공항을 첫 방문지로 택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19대 대선에서 대다수 후보들은 ‘격차 해소’와 ‘좋은 일자리’를 외쳤다. 문 대통령도 공약에서 “더불어 성장은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저성장·양극화(이중화)·일자리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유일한 성장전략”이라며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은 줄이며 고용의 질을 높이는 ‘늘리고 줄이고 높이고’ 정책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일자리·노동정책은 △일자리 창출(공공부문 81만개·노동시간단축 51만개) △비정규직 감축과 처우개선 △노동존중 사회 실현으로 요약된다.

새 정부의 일자리·노동정책을 관통하는 방향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집권 초기에 어떤 정책에 중점을 둬야 할까.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본지 회의실에서 '새 정부 일자리·노동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회를 보고,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집권 초 공공부문 성공 모델 만들어야

사회 : 새 정부가 일자리를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내세웠다. 집권 초기에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것 같은가.

이병훈 :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부가 일자리에 의지를 두는 것은 반길 만하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큰 그림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차원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하나하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는 공공부문·대기업·중소기업·창업(벤처)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공공부문이 일자리 마중물로서 선도적으로 다른 분야를 이끌어 가는 것은 적절하다. 그렇지만 공공부문은 마중물 역할만 해야 한다. 민간부문 없이 공공부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민간부문까지 일자리를 늘리고 질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돼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고 일자리 성과로 나타나야 한다. 중소기업 일자리 질을 높이고 4차 산업혁명 분야 일자리를 만드는 등 종합적 틀 속에서 정책을 구사할 때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전병유 : 전략적 차원에서 공공부문이 선도하는 게 맞다. 지난 20년간 노동시장은 후퇴했다. 공공부문을 노동시장 정상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공공부문이 노동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부문 다음에 민간부문까지 정상화하는 전략적 로드맵이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공공부문 일자리로 눈을 돌린다. 공공부문도 중요하지만 87년 체제와 98년 체제 이후 형성된 노동시장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다. 격차가 커지고 노동기본권이 침해되고 사회보호가 무너졌다. 이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유선 : 민간부문까지 좋은 일자리를 확산하려면 법·제도 손질을 비롯해 준비할 게 많다. 공공부문은 정부 방침만 정확히 잡아도 곧바로 실천할 수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핵심 포인트를 잡아 구체적 모델을 제시하면 집권 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새 정부 방향에는 이견이 없다.

이승욱 : 공공부문이 주도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공약을 보면 공공부문 81만개, 민간부문 50만개다. 일자리 양은 공공부문이 다수를 차지한다. 출발은 괜찮겠지만 과연 지속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지속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면서 국민에게 조세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81만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올 수 있다.

중장기 과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사회 :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34만~35만개 일자리가 늘어났다. 물론 질이 문제다. 포커스를 일자리 이중구조 개혁에 둬야 한다. 청년이 갈망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질을 높이는 데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 같은데.

이병훈 :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시도했다가 결국 파산했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이런 것까지 포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100일이든 1년이든 로드맵으로 전략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개혁이 임기 초에 나올 의제인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이전 정부에서도 워낙 구조적인 문제라 다툼이 컸다. 초기에는 새 정부가 안정성을 갖고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노사가 타협을 도모할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초기부터 노동시장 개혁 문제를 붙들었다가는 노사 간 입장이 부딪치면서 일자리 성과도 내기 전에 분란이 불거질 수 있다.

사회 :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이중구조 문제와 연계해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김유선 :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 핵심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으로 파견을 확대하는 거였다. 노동시장 유연화에 방점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것은 ‘늘리고 줄이고 높이고’다. 노동시장 안정성 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승욱 : 지금 같은 연공서열제 임금체계로는 한계가 있다. 직무 내지 성과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지 않나. 각종 차별을 해소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려면 직무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성과주의 확산’ vs 문재인 ‘노동안정 회복’

김유선 : 박근혜 정부는 성과주의 확산에 초점을 뒀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체계 말은 안 했지만 직무급에 방점을 찍고 있다.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정권은 말로만 직무급·성과급이었지, 실제는 오로지 성과급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병유 :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노동개혁이 시도된 게 120건이 넘는데 성공 사례는 단 4건에 불과하다. 노동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인정해야 한다. 20~30년 쌓인 노동시장 불합리와 비정상을 규정하는 게 노동개혁 핵심 어젠다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20년간 누적됐다. 노동개혁을 감당할 만한 사람과 신뢰수준은 있는지, 타협능력을 갖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현시점에서 노동개혁 의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면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조금씩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에 공공부문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공공부문 81만개 중 5년간 공무원 일자리 17만개를 만드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지만 소방·안전·복지에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훈 : 박근혜 정부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일자리 양을 늘리겠다고 했다. 고용률 70%가 대표적인 공약이었다. 그런데 시간제 일자리를 앞세우며 질과 관계없이 일자리 늘리기를 추진했다가 흐지부지됐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성과주의가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적 가치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양이 아니라 질을 강조했다. 공공부문에서 돌파구를 찾거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면서 질을 높이겠다는 전략은 이전 정부와 다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장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성과연봉제 폐기나 비정규직 사유제한에 주목한 것은 노동시장 정책기조를 유연성에서 안정성으로 옮겼다는 뜻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았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과제다. 재계나 보수의 반발을 이겨 내면서 노동계와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다.

전병유 :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정규직을 기득권으로 몰아붙였다. 대기업 정규직 고용을 유연화하면 청년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인지 충분한 토론과 검증이 되지 않았다. 일방적이었다. 절차적으로도 민주주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았다. 대기업 기득권도 권리다. 민주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양보를 받아 내야 한다. 권리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만큼 노동계가 어떻게 책임질 거냐의 문제도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지, 그러한 행위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도 얘기해 봐야 한다.

일자리위원회, 일자리 컨트롤타워 기능 해야

사회 : 대통령소속 일자리위원회로 넘어가 보자.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각 부처 장관이 다 들어온다. 힘을 실어 준 거다. 일자리위가 어떤 어젠다를 중심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달라. 일자리위에 노사 3명씩 들어가는데, 대표성 문제는 없는지 평가해 달라.

김유선 : 일자리위는 이미 공약에서 중요하게 언급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위를 1호 업무지시로 설치했다는 것은 가능한 빨리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일자리위에는 여러 부처가 연관돼 있다. 이견을 조율하고 원활하게 집행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노동계 대표성을 여기서 논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회적 협의 성격이 있지만 1차적 방점은 집행에 있다.

현재 사회적 대화기구는 유명무실하다. 부문별·영역별로 요구되는 일자리위 역할이 있지 않나. 앞으로 논의를 해 나가면서 틀을 어떻게 가져갈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병유 : 대통령 1호 공약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고민한 건지, 대선용 공약일 뿐인 건지, 이런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국가전략적으로 경제와 노동시장 체질을 바꾸려는 비전이 있는 건지, 공약 실현 집행기구인지, 명확한 게 없다. 예컨대 다른 나라 노동시장 개혁을 보면 비전과 핵심 어젠다, 구체적 전략이 있다. 일자리위는 그런 점에서 명확하지 않다.

이병훈 : 이런 위원회는 진작부터 필요했다. 비슷한 기구가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만들어졌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뛰고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만들어진 국가고용전략회의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각 부처 장관이 참여해 일자리 문제를 총괄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위기가 지나니까 흐지부지됐다. 일자리위는 정책적 의지와 실행력을 뒷받침하는 기구다. 상설화할지 여부를 포함해 기구 위상을 생각해 봐야 한다. 정책 총괄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일자리 문제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일자리수석이나 일자리기획단 같은 라인업이 일자리 문제를 푸는 키를 쥐게 될 것이다.

이승욱 : 일자리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사회·노동정책이 경제정책에 우선하는 최초의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충돌할 때 대통령이 총괄 조정하고, 경우에 따라 노동정책을 먼저 고려하는 초유의 구조였으면 한다.

이병훈 : 일자리위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일자리 문제에는 노동정책과 산업정책이 다 걸려 있다. 일자리위가 일자리 정책을 총괄 기획·조정한다면 노사정위는 사회적 타협을 도출하면서 굴러가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둘 다 대통령 자문기구 형태이지만 일자리위는 컨트롤타워로, 노사정위는 사회적 타협기구로 자리 잡는 구도를 그릴 수 있다. 이런 구도라면 노사정위가 나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산업·업종별 일자리 노사정 타협 가능
일자리위와 노사정위 분업구조로 역할 나눠야


사회 : 보건의료노조가 23일 청와대에 보건의료 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방안을 전달하고 일자리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노사정 타협은 전국적 수준보다 산업·업종에서 많을 것 같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노사정 타협을 섹터별로 하면 실사구시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병유 : 노동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일자리위를 만들었다는 것은 국가 주도로 가겠다는 뜻이다. 노사정위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양대 노총은 몇 년간 관심도 안 뒀다.

김유선 : 당장 중앙 수준의 노사정위는 유명무실해졌다. 일자리위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고, 사업·부문·의제별 대화기구를 다양한 차원에서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중앙 대화 틀이 새로 재편될 것이다. 대화 틀이 어떤 모양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전병유 : 새 정부에게 노사정위는 관심 밖인 것 같다. 대통령이 일자리위에 힘을 싣고 있다. 양대 노총이 어떻게 발을 담글지 궁금하다.

김유선 : 김대중 정부 시기에 노사정위는 빠른 시일 안에 합의 가능한 의제를 다뤘다. 최고권력자가 힘을 실었다. 그 판이 지난 뒤에는 죽도 밥도 아니게 됐다. 결국 정부 의지가 중요하다.

이병훈 : 공약집을 보면 일자리와 무관하게 노사정위와 다른 형태의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시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사회적 대화기구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대화기구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탈피해 실질적 협의를 보장하는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노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까. 노사정위가 새로운 틀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병유 : 일자리위와 노사정위가 분업하는 게 좋다고 본다. 노사정위는 지역·산업적 역량을 키우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중앙 단위에서 타협하는 모델로 가면 될 듯하다. 일자리위는 조직이 비대해서는 안 된다. 의제를 분명히 하고 핵심 어젠다를 중심으로 역량을 실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동이 필요한 것은 노사정위에 과제를 줘야 한다. 노사정위를 무력화하면 안 된다.

최저임금 1만원, 영세자영업자 보호책 필요

사회 :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어떻게 보나.

이승욱 : 매년 15.7%씩 3년 내 1만원으로 올리면 영세사업자·자영업자가 버틸 수 있을까. 아무런 보조 없이?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저임금 수준은 한계 상황에 있는 영세사업자·자영업자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대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근로자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자공유제, 각 사업자의 관리·운영업무를 대행해 주는 회사 설립과 지원을 생각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델을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에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것과 함께 영세사업자·자영업자에 대한 고용조직 모델을 제시해 민간부문 활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액이 사회보장제도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재검토도 필요하다.

이병훈 : 최저임금 1만원도 일자리위 못지않은 대표 공약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정부 정책 후퇴로 받아들일 것이다. 가시밭길을 갈 수밖에 없는 과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일단 시작해야 한다. 대선에서 여야 5당이 합의하지 않았나. 두 자릿수 인상을 해 보고 파급효과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한 뒤 내년 일자리 정책에 반영하면 된다. 현실을 지켜보면서 임금범위와 개선과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한다.

사회 : 최저임금 1만원은 사회적 동의가 된 것 같다. 그런 만큼 한번 해 보고 어렵다면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하면 되지 않겠나.

전병유 : 최저임금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시장 정책이다. 공약대로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10% 이상 인상했다.

김유선 : 최저임금액으로 따지면 박근혜 정부 때는 매년 500원씩 올랐다. 최저임금 1만원을 2022년까지 한다면 700원씩, 2020년까지는 1천원씩 올리면 된다. 내년 최저임금은 국민적 분위기로 볼 때 크게 부담이 없을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총대를 메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후보들이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 보완책으로 근로장려세제(EITC) 증가, 사회보험료 한시적 지원, 최저임금 인상분 하도급 단가 반영, 카드 수수료 인하를 공약했다.

원칙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바꾸는 것에 동의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불리한 게 아니다. 진짜 저임금 노동자는 상여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최저임금 산입범위 정의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이 매끄럽게 단축되는 방법

사회 : 노동시간단축도 꽤 이견이 좁혀졌다. 방법상 문제만 남았다.

이승욱 : 노동시간단축을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동시간단축을 원하지 않는 회사나 업종도 있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노동시간단축을 원하지 않는 노동자나 회사의 의사를 반영할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산별협약에서 노사합의 때 한시적으로 노동시간단축 예외를 인정하면 매끄럽게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유선 : 그렇게 하면 노사 간 담합이나 관행을 용인하게 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길게 일한다. 그래서 법에서 강행력을 줘야 기존 담합이나 관행이 깨진다. 어느 정도 정상화가 되고 나서 예외를 검토하는 것이다. 전반적인 공감대를 이룬 것은 일단 깨끗하게 밀고 가야 한다.

이병훈 : 공약대로 노동시간단축에 따라 일자리 50만개를 만든다는 게 엄밀한 추정은 아니다. 노사가 소득감소와 인건비 증가를 피하려고 임금보전을 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예상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을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과 임금보전,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 이상으로 노동체제·생산체제를 바꿔야 한다.

사회 : 노동시간단축은 임금만이 아니라 교대제·생산성과 연계돼 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기업은 당장 물량을 납품해야 한다. 교대제를 바꾸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하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2년 정도면 어떨까 싶다.

김유선 : 일단은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못했다면) 처벌 위주가 아니라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서를 내게 해야 한다. 마냥 늘어지게 하면 안 된다.

비정규직 25% 규모로 낮추는 강력한 한방은?
차별시정·간접고용·특수고용직 사각지대 해결 시급


사회 : 비정규직법 문제를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 외에도 사용사유 제한 도입,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제 도입, 비정규직 차별금지특별법 제정, 공정임금제 도입, 원·하청 간접고용 공동사용자 책임을 약속했는데.

전병유 :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 25% 수준까지 낮추도록 일정한 정도의 사유제한을 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 과감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병훈 : 이 문제는 관련법 제·개정 문제가 뒤따른다. 사회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중기 과제로 본다. 사유제한으로 완전히 자물쇠를 걸어놓는 식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 정규직 이야기 없이 비정규직에만 논의를 국한했을 때 또 다른 논란이 커지고 저항이 있을 것이다. 법률 개정안과 관련해 노사정위에서 결론이 날 때까지 사회적 논의를 하면 어떨까. 대선 공약은 사회적·현실적 파급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인 만큼 이후 하나씩 따져서 법 제·개정으로 접근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이승욱 : 사유제한이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이긴 한데, 처음부터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병유 : 사유제한을 네거티브로 하면 된다.

이승욱 :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하든 사유제한이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횟수 제한이 없고 공백기간 기준도 없다. 공백기에 임금지급과 관련해 여러 정책수단이 있는데도 기간제법에는 기간제한 하나만 있다. 마일드한 수단을 도입하면서 경제적으로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어떤 행동을 억제할 때 쓰이는 수단)를 둔다든지 하면 된다. 그래도 정책효과가 안 나타나면 사유제한까지 가면 된다.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 :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서 차별시정 범위를 굉장히 좁혀 놨다. 그걸 넓혀서 유사한 직무를 하면 임금을 동일하게 주게끔 하면 어떤가.

이승욱 : 차별시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비교대상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차별시정제도가 실패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교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업장 단위에서만 비교하다 보니 비교대상자가 없다. 유럽은 산별 차원에서 한다. 우리는 산별협약이 없기 때문에 동종 산업에서 비교대상을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소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없도록 비정규직 정책을 써야 한다. 그 사업장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전병유 : 비정규직 문제가 20년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며 쓰더니 지금은 당연하게 쓴다. 비정규직 문제는 적극적 수단이 필요하다. 제대로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나쁜 정책 중 하나가 정규직 전환이다. 잔뜩 비정규직을 만들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서 옆으로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끝내야 하는데, 또 정리하지 않고 가다가 비집고 밀어넣는다. 조직 안에서 불협화음과 조직 성과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전환이 아닌 입구(채용)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지 공공부문부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병훈 : 비정규직 문제는 차별문제와 함께 사각지대에 놓인 간접고용에 대한 원·하청 문제, 특수고용직 문제부터 빨리 보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부, 노동자 위한 목소리 내야
근로감독청 신설·노동전담 검사 노동기준 이행 도움


사회 : 정부가 법을 안 바꾸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대통령뿐 아니라 노동부도 할 수 있는 게 꽤 있다. 근로감독만 제대로 해도 현장이 달라진다. 그래서 근로감독청 이야기가 나온다. 노동부 역할이나 조직개편, 노동위원회와 분리 문제에 관해 의견을 말해 달라. 대형 산재사고도 너무 많이 터진다. 상습적이다. 원청에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병훈 : 두 가지를 정비해야 한다.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부가 들러리를 서지 않아야 한다. 노동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당당하게 노동을 지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근로감독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법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진흙탕 물이 걸러지고 맑아져야 신뢰가 쌓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이든, 행정 차원이든 간에 근로감독관을 늘려야 한다. 근로감독청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근로감독만이 아니라 노사업무까지 정비해서 근로감독관들이 근로행정을 제대로 하게 해야 한다. 산업안전 분야도 마찬가지다. 산업안전청을 신설해 전담감독관을 두고 현장에서 법질서가 지켜지도록 행정체제를 갖췄으면 한다.

김유선 : 기존 질서가 워낙 비정상이다. 잘못된 지침을 폐기하고 법질서를 똑바로 세워야 한다. 근로감독관 증원이나 근로감독청 신설, 노동전담 검사 도입에 찬성한다.

전병유 : 파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문제도 손봐야 한다.

이승욱 : 미국·일본·독일 등 다른 나라들은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안 한다. 관행적이다. 청구해 봤자 노동자가 돈이 없고, 사용자 소송비용이 더 많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송을 남용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돈을 못 받을 걸 알면서도 소송을 한다. 노동자를 괴롭히려는 목적의 손해배상 소송은 끝낼 때가 됐다. 문제는 입법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입법기술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 : 노동전담 검사는 실효성이 있을까.

이승욱 : 근로감독청 신설이나 노동전담 검사 도입은 노동기준 이행력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처벌에 의한 노동기준 확보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처벌받는 것보다 사용자에 의해 위반된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받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칙에 의한 노동기준 확보 외에도, 노동자가 신속하고 저렴하게 개별적인 노동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해 노동자 권리 보장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정규직노조, 지키기 위주 벗어나 사회적 책임 다해야

사회 :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다.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병훈 : 산별교섭을 활성화해야 한다. 산별협약의 일반구속력을 확장하면서 노동시장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정부가 끌고 가야 한다. 노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 정부 행보에 노조가 어떻게 화답할지가 중요하다. 너무 앞서가는 기대나 조급한 행동을 하면 참여정부처럼 노정 간 엇박자가 나서 기회를 날릴 수 있다.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노조는 다른 면에서 책임지는, 사회적 책무감과 행동으로 화답하고 동참하는 변화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새 정부도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정규직 노조는 지키기 위주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시장 외부자를 위해 더 노력하고 달라져야 한다.

전병유 : 국가 정책적 의지가 중요하고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과 취약계층 목소리를 어떻게 조직할지도 중요하다. 사업체협의회든 노동회의소든, 노동복지센터든 다양한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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