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땀과 눈물을 먹고 자라는 경제성장 정책은 이제 폐기해야 합니다. 다음 정부의 성장정책 맨 앞에 노동자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습니다.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노동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문재인과 함께 만들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세계노동절에 한국노총과 정책연대협약을 맺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노동계를 국정운영 파트너로 삼고 존중하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10일 당선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 그는 어떤 노동공약을 내놓았을까.

청년의무고용률 높이고
찍퇴·강퇴·정리해고 막고


문재인 대통령은 석패한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승리를 거머쥔 19대 대선에서도 노동 분야 공약에서 일자리를 앞세웠다. 올해 대선 10대 공약 1번이 일자리였고, 당선 후 대통령 1호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이 대표 공약이다. 올해 하반기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소방관·경찰관·교사·근로감독관을 포함해 1만2천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공부문 청년의무고용률을 3%에서 5%로 높이고 민간기업에 확산하겠다는 공약은 청년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았다. 부당한 찍퇴(찍어서 퇴직)·강퇴(강제로 퇴직)를 막는 희망퇴직남용방지법을 제정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 중장년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아울러 청소·경비·급식업무를 하는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근로조건 승계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간단축 공약도 빼놓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주당 최대 52시간인 법정노동시간 준수로 20만4천개, 연차휴가 의무사용으로 3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2015년 기준 2천113시간인 연간 노동시간을 임기 중에 1천800시간으로 줄여 5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특례업종과 제외업종을 축소하고 관공서 공휴일을 민간기업에 적용하겠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 기록의무제 도입을 위한 일명 칼퇴근법 제정과 퇴근 후 카카오톡 업무지시 방지법 제정도 약속했다.

노동시간단축은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노동행정 바로잡기 공약과 연결된다. 문 대통령은 주당 최대 52시간인 법정노동시간 준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노동부 행정해석을 폐기할 방침이다. 해당 행정해석으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법정노동시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이 무력화되고 주당 노동시간이 68시간(법정노동시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가 만든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성과연봉제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했다. 노동부가 민간기업에 지시한 단체협약 시정명령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핵심은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차별해소


일자리 양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일자리 질 향상의 핵심은 비정규직 축소와 차별해소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격차 해소로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겠다”며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비정규직 차별해소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했다. 이런 수단을 동원해 동일기업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을 대기업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공정임금제를 실현하겠다는 공약도 차별해소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또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정착 △출산·휴직 결원 등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생명·안전업무 비정규직 사용 금지 △공공부문 상시일자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민간기업 정규직 전환 지원금 월 100만원으로 확대 △비정규직 과다 사용 대기업 고용부담금 부과 등을 통해 비정규직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고 지방자치단체별 생활임금제를 확산하겠다는 공약은 저임금 노동자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상시·지속업무에 정규직을 채용하고 차별처우만 금지해도 비정규직 규모가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며 “비정규직 공약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노동기본권 보장해
노동존중 사회를 열겠다”


노동계가 가장 주목하는 공약은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노동존중 사회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협약(29호)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 비준을 약속했다. 국제협약 비준에 맞춰 국내 노동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노조 가입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를 위해 문 대통령은 △실직자·구직자·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개선 △산별교섭 등 초기업단위 단체교섭 촉진과 산업별 노사정 대화 지원 △단체협약 적용범위 확대와 효력확장제도 정비 △정당한 단체행동권 행사에 대한 손배·가압류 남용 제한을 공약했다.

미조직 중소·영세 노동자를 위해서는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설립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처럼 노동회의소를 법정단체로 만들고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특수고용직 같은 취약계층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경찰관과 소방관도 직장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직협법) 개정도 추진한다.

문 대통령은 이 밖에 서울시가 시행하는 노동이사제를 전체 공공기관에 도입하고 민간기업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감정노동자의 긴급피난권 보장과 산재보험 적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도 약속했다. 중등 교과과정에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인권교육을 반영하고 알바존중법을 도입해 청소년 때부터 노동기본권을 익히고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1천200명 수준인 근로감독관은 2천명으로 증원한다. 이어 노동부·검찰·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이 참여하는 노동관계 합동수사 태스크포스를 꾸려 실질 수사권을 강화한다. 임금체불 같은 기초고용질서를 확립해 청소년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억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선거 기간에 “노동계를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공약으로 구체화했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에는 비정규직·하청·청년·여성 노동조직 대표자들과 대기업·중소기업 등 다양한 부류의 경영계 대표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노동·고용·복지 이슈를 포괄하는 ‘노동존중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임기 동안 실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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