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올해는 소방공무원들의 노동권이 확대되는 한 해였다. 지난 6월11일 소방공무원의 직장협의회 설립을 허용한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직협법)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공무원직협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9일에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의 범위로 소방공무원이 포함됐다. 내년 6월께 개정안이 효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이르면 6개월 뒤에 소방공무원 노조가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소방공무원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를 하거나 기밀을 다룬다는 이유로 노동기본권이 제한됐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권이 확대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밤샘 근무에 심혈관질환 시달려
“3조1교대제 실시해야”

대전 유성소방서 궁동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34년 경력 김홍준 소방위는 3조2교대 근무를 한다. 처음 1주일은 낮에, 2주일은 밤과 아침에 일한다. 낮 근무를 할 때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 2주차는 야간 근무와 비번의 반복이다. 2주차 첫날은 저녁 6시에 출근해 아침 9시까지 일하고 하루를 쉰다. 이를 2번 더 되풀이한 뒤 2주차 마지막 날 24시간 당직을 선다. 3주차는 야간 근무와 비번, 24시간 당직을 반복한다. 김 소방위는 “90%의 소방관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며 “소방관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당비비’ 제도를 원한다”고 밝혔다.

김 소방위가 말하는 ‘당비비’ 근무제도란 당직-비번-비번으로 이어지는 교대근무 제도의 약자다. 정식 명칭은 3조1교대 제도다.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총근무시간도 현재 제도와 차이 나지 않는다. 현 교대근무 제도는 한 주는 낮 근무, 한 주는 야간 근무, 한 주는 야간 근무와 당직을 돌리는 ‘3조2교대’ 근무가 대부분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당비비를 시행하는 소방관서는 전국에서 1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청은 지난해 6월 3조1교대 근무체계를 하는 관서를 10%까지 늘리기로 했다. 소방공무원의 업무량과 강도를 기준으로 관서 유형을 A·B·C 세 등급으로 나눠 출동 건수가 비교적 적은 B·C 그룹에 3조1교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현 근무제도의 문제는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휴식이 부족한 야간 근무와 교대 근무는 심혈관계질환을 야기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1편의 국제논문을 분석한 것에 따르면 교대근무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률을 26%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5편의 국제논문 분석에서는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주 35~40시간 노동과 비교해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은 1.13배, 뇌졸중 발생 위험은 1.3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방공무원은 심혈관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순직한 소방공무원 51명 중 14명(27%)이 급성심장사 같은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2014~2018년까지 공무상 재해신청을 한 소방공무원 192명의 질병유형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51명(26.6%)이 뇌혈관계질환, 26명(13.5%)이 심혈관계질환으로 재해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8년 경력의 소방위이자 소방공무원의 권리향상을 위한 조직인 소방발전협의회 박해근 회장은 “소방관은 심혈관계질환으로 숨지는 일이 많다”며 “우리 소방서에도 뇌질환과 관련한 약을 먹는 이가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이라고 말했다.

현장 소방공무원들은 3조1교대제를 원한다. 소방청의 2017년 시·도 외근 소방공무원(화재진압·구급·구조·화재조사·상황관리) 6천3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9.03%(4천392명)가 3조1교대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 소방의 경우는 대부분 3조1교대제나 4조2교대제가 도입됐다. 4조2교대제는 주간-야간-비번-비번 형태의 근무제도로 현재 소방청의 119 종합상황실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전남소방본부 등이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전체가, 미국과 독일의 경우 대도시나 구급대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66%는 건강 이상, 턱없이 부족한 보상체계

소방공무원들은 현재 지급되는 각종 수당도 자신들의 업무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당 신설과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화재·구조·구급 및 각종 재난활동 등 상시 위험을 동반한 긴급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특수건강진단 검진자 4만9천575명 중 3만2천756명(66.1%)이 각종 질환을 앓고 있거나 발병 가능성이 높은 건강이상자였다.

소방발전협의회는 위험근무수당지급구분표에 월지급액 10만원 상당의 특종과 30만의 생명수당 지급표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소방공무원들은 위험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위험수당 월 6만원을 받고 있다. 이는 공무원수당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규정은 업무의 위험도를 갑·을·병종으로 구분하고 각각 월 6만·5만·4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은 현재 가장 위험한 직종에 해당하는 갑종에 해당된다.

하지만 소방공무원들은 월 6만원의 수당으로는 위험한 업무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소방발전협의회는 갑종보다 높은 특종이라는 업무 위험도 등급을 신설하고, 30만원의 생명수당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무 특성을 고려한 정액급식비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정액급식비는 직급과 직종에 상관없이 월 14만원이 지급된다. 소방노동자들은 3교대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출근해서 식사하는 횟수가 더 많다. 한 달에 23일을 출근해 회사에서 식사를 한 번 하는 공무원들은 한 끼에 6천86원으로 환산된다. 한 달에 10일을 출근하지만 한 번 출근에 식사를 세 번 하는 소방공무원들은 한 끼에 4천666원으로 환산된다. 소방발전협의회는 “통상근무자와 교대근무자는 근무방식 및 근무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식사 횟수부터 차이가 발생한다”며 “근무 중 식사 횟수에 준하는 정액급식비 지급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직협회장들 “노조 만들 것”

직장협의회 회장들은 직장협의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노조 조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영재 대전 둔산소방서 직장협의회 회장은 “직협은 연합을 할 수 없지만 노조는 연합을 할 수 있어 소방공무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내년에 노조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대전 지역에 있는 소방공무원 노조를 조직하고 다른 (시·도) 관서들과도 연합해 상부 기관에 근무체계와 수당 외에도 승진제도 등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양대 공무원노조도 소방공무원 조직화를 돕고 있다. 공노총은 올해 서울소방재난본부직장협의회·소방청·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와 간담회를 여는 등 직장협의회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공노총은 소방공무원 직장협의회 설립과 가입을 지원하면서 소방공무원 조직화에 관심을 가져 왔다. 공무원노조도 “여러 군데 접촉을 해 왔다”고 밝혔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하면서도 권리는 찾지 못했던 소방공무원들의 노조설립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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