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2016년 전태일 장학금 수여식에서 이수호 이사장을 비롯한 장학사업 운영위원들이 장학금 수혜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기훈 기자

"어머, 뉘 집 딸내미가 저렇게 이쁘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할까."

지난 16일 오후 전태일장학금 수여식장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학생 서진주(가명)양이 "이번 장학금으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열사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밝히자 참석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전태일 열사 얼굴이 새겨진 장학증서를 가슴에 품었다. 표정에는 긴장감과 쑥스러움이 묻어났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겠다"는 소감도 나왔다.

◇전태일의 친구, 적금 털어 자금 쾌척=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이사장 이수호)에서 제1회 전태일장학사업 장학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장학사업은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 차비를 아껴 나이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서 건넸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잇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전태일의 친구이자 옛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모임인 청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종인씨가 매달 80만원씩 10년간 부은 적금 1억원을 재단에 쾌척하면서 장학사업의 물꼬가 트였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과 좋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온 친구들이 전태일 정신을 잇고 조금이나마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중한 장학기금을 마련해 주셨다"며 말했다. 이 이사장은 장학금 수혜자들을 향해 "특별한 장학금이지만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라"며 "그저 살면서 전태일 정신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청우회 회원인 임현재 전태일장학사업 운영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뿐만 아니라 당시 재단사들 모두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된 사람들"이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싶어 시작한 장학사업인 만큼 비록 장학금(액수)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뜻은 알아 달라"고 당부했다.

◇"전태일 열사 좇는 부모 이해했으면"=전태일장학금은 나이·소속에 관계없이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재단은 이날 사회운동 활동가 자녀와 청우회 회원 자녀,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등 10명에게 100만~2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아버지가 활동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빠는 왜 알아 주지도 않은 일을 할까' 원망도 했다"는 한수민양은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의 딸이다. 한양은 "한편으로는 아버지 활동을 좋게 봐 주셔서 장학금을 주신 것으로 본다"며 "고맙게 잘 쓰겠다"고 인사했다.

이날 딸의 대학등록금을 지원받은 이병렬 전 보건의료노조 연대사업국장은 "이런 뜻깊은 장학금을 딸아이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전태일 열사의 생을 좇으려는 부모들의 노력을 아이들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장학금 수혜자 중 1명인 이주노동자 A씨를 대신해 감사인사를 전했다. A씨는 2013년 테러리스트로 몰려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에 쫓기다 2층에서 떨어져 다리 장애를 입었다.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은 "A씨가 테러리스트라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무차별적인 단속을 벌이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는데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A씨가)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장학금 대상자로 뽑히면서 한국에 대한 나쁜 기억이 사라질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A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다.

한편 전태일장학금 종잣돈을 마련한 최종인씨는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며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최씨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늘 전태일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며 "이렇게나마 전태일의 뜻을 기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한 청우회 회원들은 전태일장학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5년에 걸쳐 10억원을 모아 장학재단을 세울 것"이라며 "장학재단을 세우고 나면 전태일기념관 건립도 꿈꿔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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