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제소 같은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도 주요 대기업 단체협약에서 노동자 경영참가 조항 삭제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노조파괴 시도 의혹이 일었던 갑을오토텍 폭력사태를 막지 못한 무기력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36%가 고용세습, 47%가 경영권 침해 조항”

노동부는 24일 노조가 있는 매출액 상위 30대 대기업 단협 실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조사대상 기업 중 11곳(36.7%)의 단협에 현직 노동자나 장기근속자·정년퇴직자의 자녀·직계가족을 신규채용시 우선고용하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유일교섭단체 규정을 둔 기업은 10곳(33.3%)이었다. 노동부는 이들 기업의 단협이 고용정책 기본법·직업안정법·민법·노조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정리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이나 기업의 합병·양도, 노동자 전환배치시 노조나 본인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단협을 둔 기업은 14곳(46.7%)이었다. 노동부는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규정으로 간주했다.

GS칼텍스·SK이노베이션·SK텔레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에쓰오일·현대중공업·현대오일뱅크·현대모비스·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한국지엠·대우조선해양·SK하이닉스·SK텔레콤·현대제철·대한항공·엘지유플러스가 노동부가 지목한 위법·불합리한 단협이 있는 기업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노동부는 8월 말까지 자율적으로 단협을 시정하도록 하고, 위법한 조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 의결을 받아 시정명령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노동부의 단협 시정 추진계획과 관련해 양대 노총이 이달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제소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협 시정을 밀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노동부가 문제 삼은 단협 조항 중 조합원 자녀 우선고용이나 유일교섭단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동부가 지목한 사업장 중 민주노총 소속을 파악한 결과 조합원 자녀가 고용세습 형태로 채용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비판했다. 단협에 유일교섭단체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지 않으면 교섭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부가 단체협약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하나라도 찾으려 노력했는지 알고 싶다"며 "노동부가 주장한 불합리한 조항은 부당노동행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임에도 대기업노조 흠집내기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현실에서 적용이 되지 않으면 더더욱 조항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인사·경영권 침해 조항은 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개정을 권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점검·특별근로감독에도 갑을오토텍 사태 방치

노동부는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 3천곳을 대상으로 단협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시정명령 대상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협 시정 문제는 발빠르고 강경하게 대응한 반면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한없이 굼뜬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5월부터 부당노동행위가 예상되는 사업장 200곳을 대상으로 집중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점검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특전사·경찰 출신 신규직원들이 새 노조를 만들어 금속노조 조합원을 폭행한 갑을오토텍의 경우 노동부 천안지청이 3월24일 선정한 집중점검 대상에서 빠졌다. 갑을오토텍 기업노조 설립신고증은 천안지청이 집중점검 대상을 선정하기 전인 3월11일에 나왔다.

노동부는 사내하청·외주화로 갈등이 예상되거나 친기업노조 설립 지원으로 부당노동행위가 예상되는 사업장을 점검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노사갈등이나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천안지청은 금속노조의 문제제기로 4월14일에야 특별근로감독에 돌입했지만 폭력사태를 막지 못했다. 노동부의 집중점검이나 특별근로감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누가 봐도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멀쩡한 단협을 뒤지는 거냐”고 반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