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 앞에 앉아선 바짝 얼었다. 영정사진 찍는다기에 제일 멋진 옷을 입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특별한 사진을 남겼다. 한국노총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에서 준비했다.  정기훈 기자 

“눈이 좀 커 보여야 하니까 쌍꺼풀 있게 고쳐 줘야 해. 몸은 허리가 쑥 들어가게 늘씬하게 해 주고. 알았지?”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꽃무늬 블라우스를 차려 입은 이순이(65) 할머니가 양손으로 겨드랑이를 쓸어내리며 "호호호" 웃는다. 옆에 선 김순이(67) 할머니도 예의 그 꽃무늬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난 평상시랑 똑같이 입은 거야. 화장도 안 했어. 그냥 여기 와서 루즈만 살짝 발랐다니까”라며 손사래를 친다.

5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원진산업재해자협회. 한국노총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이사장 이남순)과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위원장 윤창수)의 영정사진 촬영봉사가 있는 날이다. 카메라 뷰파인더 속 ‘쌍순이’ 할매들이 해사하게 웃는다.

▲ 꽃무늬 블라우스에 입술 유난히 빨갛던 오른쪽 순이 아줌마는 아무것도 준비 안했다고 능청이다. 왼쪽 순이 아줌마가 어이없어 웃는다. 이른바 '쌍순이' 아줌마 가운데서 한창길 위원장이 따라 웃는다. 정기훈 기자
원조 '죽음의 공장' 원진레이온

“영정사진 찍고 나니까 기분 묘하네. 진짜 죽을 날 받아 놓은 것 같고 말이야. 하기야 죽는 길로 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지. 그러니까 기사 잘 써 줘야 돼. 자식들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게끔. 알았지?”

할머니들은 원진레이온 노동자였다. 64년 일본 도레이레이온의 중고기계를 들여와 66년 설립된 대한민국 유일의 비스코스 인견사 생산공장은 그들의 일터였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상시근로자 3천500명 규모의 큰 회사에 입사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던 때였다. 하지만 지독했던 가스냄새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가스가 오죽 심했으면 신랑 없는 과부들만 뽑는 곳이 원진이라는 말이 있었어. 10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가면 동전 색깔이 새까매질 정도였으니까. 습도랑 온도 맞춘다고 공장 문을 꽉꽉 닫아 놓고 그 독가스를 마시면서 일한 거야.”

2차 세계대전 때 신경독가스의 원료로 쓰였던 이황화탄소(CS2)에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노출됐다. 결과는 끔찍했다. 가스에 중독된 이들은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정신이상, 성 불능, 콩팥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보였다. 원조 ‘죽음의 공장’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고통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직업병으로 판정 받고 15년째 매일 아침 열두 알, 저녁에 열두 알씩 약을 먹는데…. 약도 오래 먹으면 지치더라고. 약을 손에 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날이 얼마나 많은가 몰라. 팔다리는 저리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힐 때도 있고.”

김순이 할머니는 자신이 ‘무’ 같다고 했다. “무가 겉으로 보기엔 허여멀건 하니 이쁘잖아. 근데 속은 텅 비었어. 내가 그 꼴이라니까. 얼굴만 봐선 내 몸이 어떤지 몰라.”

원진 직업병 피해자 가운데 4명이 올 들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는 14명이 숨졌다. 원진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은 68세. 약과 물리치료, 정부에서 나오는 휴업급여로 살아온 노동자들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 여생을 마감하고 있다. 우울증을 동반한 자살도 계속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막히는 죽음의 고통"

한창길(68) 원진산업재해자협회 위원장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터진 88년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다. 그 역시 직업병과 세월의 합병증 앞에서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바지 주머니에는 언제나 심장약을 넣고 다닌다. 눈앞에 캄캄해지고 숨이 막히는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슬프지 않은 때에도 눈가에는 연신 눈물이 맺힌다. 이황화탄소 중독 후유증이다.

“일본이 중고기계를 팔아먹으면서, 이 기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하루종일 가스를 마시고 나면, 퇴근할 때 회사에서 돼지고기 한 덩이랑 소주를 줬죠. 이거 먹으면 몸에서 가스가 다 빠진다고. 독에 독을 더한 거죠.”

원진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일본 도레이레이온의 중고기계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폐기처분됐어야 마땅한 죽음의 기계는 중국으로 팔려갔다가 지금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화의 잔해처럼 직업병의 유령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텔레비전에서 직업병 관련 뉴스가 나오면 눈여겨봅니다. 세상은 좋아졌다는데 노동자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삼성같이 큰 기업에서 백혈병에 걸린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세요. 한국타이어 같은 대기업에서 발암물질 때문에 노동자들이 병이 나잖아요.”

직업병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창길 위원장은 “기업들이 수익의 작은 부분이라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해 내놓는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좀 웃으시라고 사진가는 애걸복걸이다. 그러나 표정, 변함없다. 정기훈 기자

"어르신들 모두 무병장수 하시길"

카메라 앞에 앉은 박상익(74) 할아버지는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 때문에 양복저고리를 차려입고 오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려 보였다. 입고 온 청록색 등산셔츠 위에 급한 대로 남의 자켓을 빌려 입고 영정 촬영을 마쳤다.

“때 되면 누구나 가는 거지. 그래도 오랜만에 웃으면서 사진 찍으니 기분이 좋아. 집에서 나오는데 마누라가 ‘아니 여보, 먼저 가면 어쩌려고 그런 사진을 찍어요’하면서 걱정을 하더라고. 아무렴 어떤가. 영정사진 미리 찍으면 장수한다잖아.”

이날 남양주시와 구리시에 거주하는 11명의 원진 피해자들이 영정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갔다. 촬영된 사진은 보정작업을 거쳐 인화된다. “좀 더 예쁘게 고쳐 달라”는 주문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눈이 작은 사람은 눈을 크게, 코가 낮은 사람은 코를 높게, 주름이 많은 사람은 팽팽하게…. 주문자 취향대로 손질된 사진은 영정 액자에 동봉돼 사진 주인에게 무료로 배송된다.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의 영정사진 봉사활동은 올해 3월 처음 시작됐다. 사진촬영에 쓰이는 비용은 마필관리사노조가 자체 예산으로 부담하고 있다. 그동안 한센병 환자나 산재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픈 몸을 끌고 노인 스스로 사진관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렇다고 자식들이 직접 모시기는 더 어렵고요." 재단이 영정사진 봉사활동에 나선 이유다. 박수만 국장은 "환갑 때 찍은 영정사진은 무병장수의 의미를 갖는다"며 "사진을 찍은 어르신들 모두 건강하셨으면 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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