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주최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20년을 돌아보며'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은 12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1천여명의 중독환자를 양산시킨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원진환자들은 많은 투쟁 끝에 이황화탄소 중독 인정기준을 바꾸고,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으로 인해 안전보건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는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도와줬던 노동자·진보적인 의료인 그리고 정부를 비롯한 사회적인 여건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진레이온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제목에서 밝혔는데 이는 원진레이온과 같은 상황이 현재도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유기용제·중금속 중독 등 고전적인 직업병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원진사건 이후로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환경을 개선해 직업병 발생이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많은 공장들이 해외로 진출했거나 아니면 소규모사업장으로 이전돼 문제가 은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주노동자의 앉은뱅이병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 노조의 영향이 미치지 않고,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이 낮은 소규모사업장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한다. 당시 원진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의 독성을 알았더라면 이렇듯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됐을까. 아닐 것이다. 원진사건 이후 안전보건교육이 제도적으로 보장됐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진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안전보건교육을 축소시키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안전보건교육이 실시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발암물질목록을 작성해 발표했다. 놀랍게도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78%가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발암물질인지 전혀 모르고 일하고 있었다. 원진사건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작업환경측정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원진레이온에서 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기 전에도, 발생했을 때도 우리나라에는 작업환경측정제도가 있었고 원진레이온의 이황화탄소 농도는 항상 허용기준 이하였다. 그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환경측정제도의 실질적인 개선을 요구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작업환경측정제도는 어떠한가. 문제되는 사업장에서 조차 허용기준을 초과한 측정결과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이 예상은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이렇듯 부실한 작업환경측정제도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진환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은 정말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진 환자의 70%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약을 먹고, 매년 한두 명씩 자살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이는 일반 인구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가정 내 불황도 심각하다. 몸과 정신이 성하지 않은 환자들을 평생 돌보는 가족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가정 내 불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황화탄소로 얻은 병만큼이나 장기간의 요양 과정에서 발생되는 가정과 사회적 관계의 문제가 원진환자에게는 있다. 즉 현재의 요양제도가 정말로 원진환자들의 인권을 지켜 줄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해 봐야 한다. 정부는 원진 환자에게 휴업급여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원진환자들이 어두운 방안, 답답한 병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봉사도 하고, 재미있는 활동도 하고, 작은 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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