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의 직업병 집단발병사례인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이 발생한 지 20여년이 지났다. 900여명이 넘는 직업병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88년 문송면군의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에 직업병을 각인시켜 준 원진레이온 사건을 되돌아보고 과제가 무엇인지 조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원장 강성규)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발생 20년을 되돌아보며’를 주제로 산업안전보건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정부 대책 이끌어 낸 노동자 투쟁

양길승 원진녹색병원 원장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은 노동자 건강 문제해결의 역사적 전형이 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대책위원회는 피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사회 각계 인사·의료전문인으로 구성됐다. 노사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직업병 여부와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위원회가 생겼고, 노조에서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다루는 부서가 만들어졌다.

91년에는 정부의 직업병 관련 종합대책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노동부 근로자건강보호과 관계자는 “정부는 종합대책에서 사업장 작업환경 개선과 유해물질 관리방법 등을 개발하는 한편 산업보건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며 “직업병이 발생했을 때 근로자가 신속하고 공정한 판정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업장 자체 보건관리자에 의한 1차적 예방중심체계로의 전환 △석면 등 직업병유발물질에 대한 제조·사용 허가제 △직업별 발생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2천개 집중 개선 △5년마다 작업환경실태조사 △산업보건연구원 설립 등이 종합대책에 포함됐다.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의학적으로 명백한 경우’에서 ‘의학적으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로 전환된 시점도 이때였다.

양길승 원장은 “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 조직률이 급등했다”며 “이런 축적과 성장으로 문송면군 수은중독 사건과 집단 직업병 발생이 묻혀 버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20년 이후 상황 평가는 과제로 남아

이은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원진레이온 사건은 우리나라 산업보건 역사의 치부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산업보건제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원진레이온 사건 당시 직업병 판정을 둘러싸고 전문의별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등 시각의 차이가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나라 산업보건제도가 노동부 지정기관에 의해 이뤄지고 사측이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노동부와 사측의 영향력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며 “원진레이온 문제는 처음부터 제도적 틀을 떠나 접근했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조수헌 서울대 의대 교수는 “원진레이온 사건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당시 요양승인을 받았던 직업병 환자들의 상병명·추가상병·후유증상·요양 기간·요양 결과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원진레이온노조 위원장이었던 황동환씨는 “위원장으로서 원진레이온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언론에 호소했다”며 “당시에도 미흡하나마 예방제도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황씨는 “최근 한국타이어를 보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보건 분야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며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직업병의) 명백한 근거를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원진레이온 노동자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이 발생한 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피해 당사자들이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상황이고, 또 다른 형태의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길 원진산업재해자협회 회장은 “원진환자의 70%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약을 먹고 있다”며 “현재의 요양제도가 정말로 원진환자들의 인권을 지켜 줄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는 “비정규·영세 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장들의 안전보건 문제는 현재 산업보건영역의 매우 예민한 과제”라며 “이들은 2010년대의 원진레이온 노동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20년 전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반월·시화지역산업보건센터 같은 산업안전보건과 지역사회건강증진이 통합될 수 있는 공공센터설립 확대 또는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설립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영숙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은 “기존의 노조들이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건강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활동했나 반성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인식도 중요하지만 사업주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최근 기업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이 감춘 영업비밀에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있다면 원진레이온 사태와 같이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또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각지대 비정규·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노동부 관계자는 “직업병 예방을 위한 하나의 큰 축이라고 볼 수 있는 노조 조직률이 점차 감소되고 있고 노조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증가됨에 따라 노사자율에 의한 직업병예방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며 “직업병 예방 강화를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기정 경총 사회정책본부장은 “산업재해율이나 사망만인율을 보면 법이나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규제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위주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본부장은 “대기업은 노사자율 시스템으로 가고 정부와 산안공단은 중소영세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진레이온과 이황화탄소
김대성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인견사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최초의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은 1890년대 독일에서 발생했다. 1950년대 미국·유럽·일본에서 비스코스(황적색의 점성도가 높은 용액) 레이온사 제조가 활발해지면서 이황화탄소 중독자가 많이 발생해 레이온 제조공장이 다른 나라로 이전됐다. 미국의 설비는 중남미로, 일본의 설비는 한국과 대만으로 옮겨졌다.
우리나라는 5·16 군사정권이 주도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전략산업 집중 육성방침에 따라 일본정부 차관자금으로 방사기 등 중고기계를 수입했다. 화신그룹이 66년 경기도 미금시 도농동(현 남양주시 도농동)에서 원진레이온 도농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93년 폐쇄된 원진레이온 공장의 비스코스 레이온 제조설비는 중국으로 이전됐다.
이황화탄소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무색 또는 담황색의 액체를 말한다. 1851년 성냥제조공장에서 인을 녹이는 용제로 처음 사용됐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레이온 제조 필수원료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황화탄소에 만성 노출되면 중추신경장해를 일으켜 무력감, 온몸에 찌를 듯한 통증, 불안증상·우울증·말초신경계 질환·허혈성 심장질환·뇌혈관질환 등 여러 장해를 일으킨다. 김대성 연구위원에 따르면 원진레이온에서는 81년 처음으로 이황화탄소 중독(당시에는 아황산가스 중독으로 판정받았으나 이후 이황화탄소 중독증으로 판정) 직업병 환자가 발생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본격화한 것은 87년 4명의 원진레이온 퇴직 노동자들이 청와대와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2008년까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950여명이다. 당시 직업병 문제를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는 언론의 역할도 컸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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